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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식이 삼촌 Aug 09. 2024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나 어릴 적 아버지는 몇 번의 사업에도 고배를 마셔야 했고 어무이는 결국 나우다린 빗 빨래집게 같은 생활용품들을 머리에 이고 보따리 장사 길을 나서야 했었어. 철부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갔다가 어무이가 놀란 토끼눈이 되어 도망쳐 나온 적이 있었고 그 집은 알고 보니 아버지 친구 집이였었어.

 
형들에게 늘 물려받든 교과서와 교복, 나이키 대신 나이스, 프로스펙스 대신 프로스포츠, 로마제 대신 구로마제 그마저도 명절 때나 어무이 손을 잡고 시장통을 가노라면 그렇게도 설레곤 했었어.
 
수차례의 실패 끝에 칠전팔기, 자리를 잡은 아버지는 20kg 넘는 화공약품을 서너통씩 자전거에 싣고서 끌다가 밀다가 오르막길을 숨이 턱 막혀가며 넘어서곤 했어. 나중에는 오토바이를 더 나중엔 생애 처음 픽업차를 장만하고 친구들을 불러놓고 고사를 지내며 감격에 어린 눈물을 쏟는 걸 보고는 너거 아버지가 울 때도 다 있다며 입을 모아 얘기하곤 했었어.    
 
세월 훌쩍 지나 내가 예비역이 되고서 화장실이 집안에 있다는 신기한 아파트를 장만했고 아버지는 매일같이 퇴근하기 무섭게 베란다를 광이 나도록 닦고 또 닦았어. 아마도 그 때 아버지가 닦은 건 베란다가 아니라 지긋지긋한 가난이었지 싶어.
 
울 어무이는 밥도 조금 드셨고 딱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이 늘 복통을 달고 사셨어.
집 형편이 조금씩 나아져도 어무이는 여전히 짜장면도 고기도 과일도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었어.
우리 어무이는 참 먹는 재미를 모르시는구나 하며 그렇게 알고 살았었어.
 
그랬는데 말이야, 그렇게 찰떡같이 알고 살았는데 말이지
올해로 어무이 연세가 85세가 되셨고 너무 놀라운 사실을 알았어.
우리 어무이는 짜장면도 피자도 햄버거도 회도 못 드시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어.
과일은 딸기를 제일 좋아하시고 반찬은 잡채 그리고 카레, 고기는 외식1번가를 최고로 여기셨어.
 
어무이는 좋아하는 게 없는 게 아니었어. 어무이는 안 드시고 못 드시는 게 아니었어.
어무이도 좋아하는 거 잘 잡숫는 거 참 많았었어. 우리는 머리만 굵어졌지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아들이었어.
 
최근 몇 년 동안 울 어무이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이 있었어.
얼마나 좋았으면 내가 전화가 안 된다고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을 정도이니 그건 바로 작은 형이 상무로 승진했던 일이었어.
명절 때 어무이가 내게 물으셨어 “동윤아? 니는 이제 과장이가 부장이가?”
속은 뜨끔! 겉은 여유만만! 나는 표정 연기를 잘해야 했고 호기있게 대답했어.
아이고 울 어무이? 나는 총장 아입니꺼 껄껄껄......!
 
올해로 승진에서 9년째 떨어졌고 앞으로도 승진을 기대하면 미친놈 소리를 듣게 되었어.
나도 솔직히 말해볼까? 어무이와 아내 그리고 두 딸에게 너무너무 미안하고 미안했었어.
나도 언젠가는 승진해서 어무이와 가족들을 기뻐게 해 줄거라 믿었었거든
2011년 6급 승진이 마지막이었으니 더 말해 뭐 하겠냐만
그래도 이거는 알아줬으면 좋겠어.

학교가 난리가 나고 매년 승진에서 탈락하는 사람들 모두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미안해서 자꾸자꾸 하늘만 쳐다본다는 거, 이들도 학교에서 열심히 일하지 놀거나 자거나 하지 않는다는 거, 학교가 해도 해도 더는 그만했으면 좋겠어. 우리는 모두 사람이잖아      

 
그러게 가만있지 왜 설치냐고?
그러니 입 다물고 납작 엎드리지 왜 시끄럽게 하냐고?
소신 직언 이따위 소리 하고 있으니 그 꼴 아니냐고?
 
이거 왜 이래? 그런 말이 아니잖아
비굴하게 입 다물고 외면하고 한 마디 찍소리도 못하면서 승진이나 하라고?
나는 말이지. 최소한 누군가 꼭 해야 할 말은 하고 아닌 건 아니다.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나보다 더 약하고 서러운 이들을 위해서 사는 게 훨씬 더 가치있는 삶에는

변함이 없어. 용기있는 게 죄인 듯이 잡아대는 학교가 개탄스러운 거지.
학교의 목표가 꿀 먹은 벙어리를 만드는 게 아닐터니.  
 
마지막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내가 중학교 시절 강아지 한 마리를 내 짝지에게 선물을 받았었어. 일명 검둥이
우리 집 귀요미 검둥이가 어느 겨울밤 하도 짖어대는 바람에 나는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했지만 울음은 멈추질 않았어. 속상해하는 나를 보고 어무이께서 조용히 마당으로 나갔다 오셨는데 기적처럼 검둥이가 울음을 그쳤었어. 뚝 하고
 
그 때 어무이의 말씀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어. 새겨들었으면 좋겠어
“너거는 따뜻한 아랫목에 있으니 밖에 있는 검둥이가 얼마나 추운지 모르제”
어무이는 낡은 이불조각을 잘라서 검둥이 집에 정성스레 깔아주고 오셨었어.  
 
우리 사회는 이래야 되는 게 아닐까?
우리 학교도 이래야 되는 게 아닐까?

우리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어무이께 배웠듯 우리 학생들도 어른들에게 배울 수 있도록     


"울 어무이는 인생을 그리 살라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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