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가 이제 막 방영 3주 차에 접어들고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서사에 깊이가 더해짐에 따라 보는 재미도 커지는 중이다.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신작 드라마이기에 벌써 흥망을 논하기에는 이를 수 있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바로는 시작부터 꽤나 ‘느낌이 좋은’ 작품이다. 1화부터 4화까지를 몇 번씩 돌려가며 찬찬히 돌아본 사람의 관점에서, <카이로스>의 매력은 ‘대비’와 ‘복선’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정리할 수 있었다.
대비의 미학: 뒤집힌 채로 맞닿은 두 세상
작품의 초반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서진의 8월과 한애리의 9월이라는 분리된 시공간을 분명한 색채 대비를 통해 아주 직관적으로 대비시켰다는 점이다.
서진의 집,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 (출처: MBC)
애리의 집, 밝고 따뜻한 분위기. (출처: MBC)
어딘지 모르게 차가움이 느껴지는 서진의 집은 금속성의 소품들과 푸른 계열의 색감, 또는 무채색으로 채워져 있다. 이와 반대로, 가족의 온기가 감도는 애리의 집은 노란 계열의 색채를 중심으로 따뜻함을 품은 공간으로 표현된다.
이에 더해, 마치 공간이 뒤집히는 듯한 독특한 카메라 워크에도 눈길이 간다.
시공간이 뒤집어지는 듯한 카메라 연출 (출처: MBC)
2화에서 등장한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깨는 서진의 장면이 <카이로스>의 카메라 연출을 잘 드러낸 예시다. 악몽과도 같은 과거의 무력한 자신과 지금의 끔찍한 현실 속 나약한 스스로를 교차시키는 절묘한 연출이 매력적이었다.
다만, 역동적인 카메라 무빙에 대해서는 시청자 반응이 조금 갈리는 듯하다. 흔들리는 카메라 탓에 보기에 어지럽고, 멀미가 난다는 의견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두 주인공, 김서진과 한애리의 상황을 번갈아 가며 조명해야 하기에 <카이로스>에서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장면 전환이 많이 등장한다. 게다가 속도감 있는 액션 신이나 인물의 격정적인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클로즈업도 빈번히 등장한다. 다채로운 장면들을 담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카메라 기법이 활용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서 각 장면의 성격에 맞는 다채로운 카메라워크를 선보인다는 것은 충분한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과해 시청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선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줬으면 한다.
작중 상반되는 캐릭터에 대한 표현은 장면의 대비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병원에서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은 엄마를 보며 오열하는 애리와, 실종된 딸의 실종아동 전단지를 인쇄해 들고 가는 절망스러운 표정의 서진을 장면 전환을 통해 연달아 보여주며 상반된 두 캐릭터를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각자의 절박함이 그들이 앞으로 무엇을 행하게 되든 아주 강력한 동기가 될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두 인물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비틀고 뒤집어 원하는 바를 손에 쥘 것인지 기대해보자.
복선의 활용: 뻔하지도, 어렵지도 않게
‘시간’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은 많았지만, 지나치게 얽혀 있는 타임라인이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야만 보이는 난해한 시각적 단서들이 진입장벽을 높인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 또한 ‘시간’을 다루는 작품들을 보다 몇 화 지나지 않아 너무 복잡해진 스토리라인 때문에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장르의 드라마를 찾아 ‘중도이탈’했던 경험이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해 왔던 시청자라면, <카이로스>가 꽤나 반가운 작품이 될 것 같다.
<카이로스>는 마냥 가볍지 않은 치밀한 서사를 택하되, 그 전달 방식에서 무게를 더는 전략을 택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회차마다 다양한 복선을 심어 두되, 그 단서들이 의도적으로 시청자의 눈에 쉽게 포착되도록 했다. 서사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을 대사와 소품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시켜서 맥락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는 뜻이다.
일례로, 1화에 등장했던 아래의 두 장면은 뚜렷한 연결성을 지닌다.
손가락에 상처가 난 다빈을 진정시키고 밴드를 붙여주는 현채 (출처: MBC)
택배 상자에 담겨 배송된 아이의 잘린 손가락을 보고 충격에 빠진 현채 (출처: MBC)
손가락을 다친 다빈에게 밴드를 붙여주며, 엄마 현채는 우는 아이를 아주 침착하고 능숙하게 진정시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된 다빈이의 소식을 기다리던 현채는 잘린 아이의 손가락을 택배로 받고 목놓아 울며 무너져 내린다. 손가락에 감겨 있는 밴드는 현채가 아이에게 직접 붙여준 것이었다. <카이로스>는 이와 같이 아주 확실한 이미지를 단서로 제시하며 시청자들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배우들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2화에서 서진이 애리의 주장이 거짓말이 아님을 깨닫는 결정적 순간에는 두 가지의 증거가 등장했다. 8월 8일의 태풍 소식을 전하는 통화 속 TV 뉴스 소리, 그리고 펜으로 고친 실종아동 전단지의 날짜다. 태풍 소식을 전하는 뉴스 보도는 일부러 소리를 키워 두고,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유도했다. 이 장면에서도 사건의 실마리를 꽁꽁 숨겨두지 않고, 보이는 곳에 슬쩍 올려 두는 느낌이었는데,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쉽게 다음에 벌어질 일을 유추하며 서사를 따라갈 수 있어 편했다.
카이로스의 세계, 앞으로는?
필자의 바람대로 <카이로스>가 대중성을 갖춘 장르물이 되기를 지향한다면 제작진이 이러한 복선의 활용에 있어 상당히 현명한 선택을 한 것 같다. 물론, 너무 뻔한 장치로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 정도를 적당히 조절할 필요는 있겠다. 소위 명료한 ‘떡밥회수’ 없이 의미심장한 단서들을 흩뿌려 놓은 채로 마무리 짓거나, 맥거핀을 남용해 시청자들에게 허탈함을 안기는 일은 부디 끝까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