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나 혼자 산다]가 불편한 이유
현재 MBC의 대표 예능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라고 자부할 수 있다. ‘나 혼자 산다’는 대한민국 예능계의 반도를 흔든 ‘관찰 예능’의 시작이었고, 이름만 들어도 전 국민이 아는 국민 프로그램으로 도래했다. 혼자 사는 이들이 많아질 무렵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의 리얼한 B급 감성 일상을 보여주며 많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고, 때론 ‘혼자’여도 괜찮다고 위로해줬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더 이상 ‘나 혼자 산다’를 볼 필요가 있을까? 유명 연예인조차 유튜브를 통해 소탈한 브이로그를 보여주고 소통하는 시대이다. 연예인의 일상은 그래도 궁금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콘텐츠’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관찰 포맷의 콘텐츠는 tvn ‘온앤오프’나 ‘여름방학’처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 ‘나 혼자 산다’는 건재한 프로그램이다. 시청률 같은 객관적 지표뿐만 아니라 대중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사랑은 때론 날카로운 지적으로 분산된다. ‘나 혼자 산다’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 속 나에게는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편집’은 자막 디자인이나 CG 같은 디자인적 편집이 아니다.)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참 많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기에 한 프로그램 반응 역시 호불호가 존재하고, 모든 시청자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렇지만,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지향할 수는 없을까? 예능 프로그램상 출연진들이 웃음과 분량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의도와 달리 ‘과함’이 때론 ‘무례함’으로 묻어 나올 수 있다. 이때, 바로 제작진의 역량이 드러나는 것이다. ‘편집’의 힘은 위대하기에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라면, 무례한 장면을 편집(삭제 혹 축소)하면 된다. 핵심 재미까지 편집하라는 강경한 주장이 아니다. ‘굳이 이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이 장면 없어도 충분히 웃긴데…’라는 순도 100% 의문에서 시작했다. 최소한 ‘무례함’이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으로 발현되지 않았으면 한다. 유해한 시대에 무해한 콘텐츠로 웃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일까?
이 장면에서 문제로 삼고 싶은 것은 기안84의 발언이 아니다. 기안84는 생각나는 말을 즉흥적으로 뱉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도 없이 단순 아파트 묘사였을 경우가 다분하다. 문제는 ‘복도식 아파트’를 빨간 자막으로 강조하고, 웃음소리 효과음까지 넣으며 ‘웃음 포인트’로 편집한 제작진이다. 편집(삭제)해도 흐름에 방해가 없는 장면이었고, 자막만 달리 표현해도 시청자들이 해가 없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나 혼자 산다’는 다양한 세대가 보는 프로그램이다. 만약 어린아이들이 ‘왜 복도식 아파트가 웃음거리가 되고, 저런 자막이 나오는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과연 우리는 머뭇거리지 않고 어떤 답변을 해줄 수 있을까?
상황 설명: ‘나 혼자 산다.’ 멤버들이 서로 사심이 있는지 거짓말 탐지기를 하던 중, 미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박나래는 개그우먼 중 ‘김민경’을 언급하며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이어 기안84가 김민경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자 모두 박장대소하고, 기안84는 어쩔 줄 몰라한다.
왜 자리에 없는 사람을 미팅 상대로 지목해 맘대로 평가하고, 기안84는 해명을 해야 할까. 그리고 도대체 왜 우리는 이 재미도 의미도 없는 무례한 장면을 시청해야 할까? 옛날에는 이런 식의 예능 소스가 먹혔다. 친목을 방패 삼아 사석에서 나올 법한 ‘오프더레코드’ 이야기를 예능에서 했고,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호프집에서 할 것 같은 영양가 없는 농담을 예능에서 보고 싶지 않다. ‘편집’ 해야 한다.
앞서 <나 혼자 산다>의 장면들이 왜 문제가 되는지 개인적 측면으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해가 쉽다. 개인 브이로그를 촬영하고 편집 의뢰를 맡겼는데, ‘복도식 아파트’라는 빨간 글자와 웃음소리로 편집되었다면? 내가 없는 사석에서 누군가 나를 타인의 미팅 상대로 거론한 것을 들었다면? 우리는 시청자로서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출연자의 발언 의도와 적합하지 않은 편집, 특정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폄하의 소재로 삼고 개그 코드로 소비하는 ‘불편한 예능’은 더는 보고 싶지 않다.
건강한 개그 코드, 건강한 예능은 힘든 걸까. 사실 ‘나 혼자 산다’의 문제점을 말할 수 있었던 용기는 모순적이게도 ‘나 혼자 산다’가 그동안 보여줬던 건강한 웃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불편한 장면을 꼽아낼 만큼 ‘나 혼자 산다’를 많이 시청했고, ‘나 혼자 산다’가 수차례 달려온 건강한 재미를 잃지 않고 개선하길 바랐다.
작년 드라마 ‘동백꽃필무렵’ 향미로 화제 된 손담비.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스쿠터를 타고 넘어지거나(…) 불 앞에서 멍을 때리는 허술한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방송이 나간 후 기종이 맞지 않는 손담비의 폰케이스가 화제가 되며 ‘대충 살자 맞지도 않는 휴대폰 케이스 끼워놓은 손담비처럼..’라는 밈이 만들어졌다.
조지나로 변신한 박나래가 난생처음 플리마켓을 열어 지인들을 초대했던 회차. 일반인 친구에게 좋은 물건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주는 모습을 통해 훈훈함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냈다. 플리마켓의 수익금은 소아병동에 기부했다고 밝히는 장면은 진정한 콘텐츠(방송)의 선순환이 아닐까?
한혜진은 코로나19로 취소된 서울 컬렉션 무대에 오르지 못한 의상을 위해 디지털 100벌 런웨이 도전했다. 100벌의 옷을 갈아입고 자세를 잡으며 떨어지는 체력에 힘들다가도, 혜진은 100벌 챌린지에 성공한다. 특히 모델 한혜진을 도와주는 스태프들을 여실히 비추며 모두의 노력을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코로나19로 패션쇼를 직접 볼 수 없다면, 디지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대안을 찾고, 그 긍정적인 대안이 빛나는 회차였다.
건강한 웃음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불편한 장면과 보고 싶은 장면은 어쩌면 한 끗 차이로 불쾌하거나 순수하고 건강한 재미를 보여줬다. ‘나 혼자 산다’는 여전히 금요일 밤 1순위 예능 프로그램이다. 나는 300회가 넘는 시간 동안 ‘나 혼자 산다’를 보며 웃고 위로받았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이 기억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나 혼자 산다’가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예능’을 지향하며 MBC 대표 예능 프로그램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이미지: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