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

6. 생존이 만드는 선택들

by NaeilRnC

공장에서의 삶이 익숙해질 즈음, 후인은 이 공간이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이 조금씩 드러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계는 늘 같은 소리를 냈고 작업 지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흘렀지만 그 규칙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누군가는 과묵함으로, 누군가는 친절함으로, 누군가는 농담으로, 누군가는 무관심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자신을 숨겼다.


그날도 평소처럼 후인은 라인 앞에 서 있었다.

기계음이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고 작업반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작업자의 손 동작을 점검했다. 그때였다. 작업대 끝에서 작은 금속 부품이 튀어 올라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짤깍.


그 소리는 작았지만 라인 전체가 순간적으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작업반장은 빠르게 다가왔다.


“누가 이거 제대로 안 물렸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라인에서 가장 조용한 직원에게 향했다.

그 직원은 말수가 적고, 눈을 자주 피하고, 항상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더 쉽게 책임을 떠올렸다. 조용하다는 이유로. 억울하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반박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군중의 판단은 때때로 논리가 아니라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후인은 그 순간 자신 안에서 아주 미세한 균열을 느꼈다.


‘혹시… 저 사람이 했을까?’


근거도 없고 증거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그에게 시선을 모으는 순간 후인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누군가를 의심한다는 건 논리보다 분위기에 휩쓸릴 때가 더 많다. 후인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그 흐름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작업반장은 차갑게 말했다.


“다음부터 이런 실수 없게 해. 알겠지?”


그 직원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변명도 없었고 억울하다는 말도 없었다.

그 침묵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그저 말할 힘이 없는 것인지 혹은 정말 본인의 실수여서 그런 것인지 어떤 해석도 가능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단순한 해석을 선택한다. 그리고 후인도 그 단순한 해석에 잠깐 기울어졌다. 야간조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후인은 몇 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갑자기 심장이 묵직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피로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왜… 그 사람을 떠올렸을까?’


오늘의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실수였다. 하지만 본능처럼 떠오른 의심이 후인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방식으로 누군가를 바라봤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고 또 그런 상황을 겪기도 했다. 그런 자신이 오늘 똑같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후인을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후인 앞에 어느샌가 모기 한 마리가 천천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에에에엥—


이 소리는 이제 단순한 벌레의 소리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틈을 찾아 파고드는 존재.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는 존재. 그리고 후인은 어쩐지 자신이 그 모기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직접 상처를 주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빈틈을 관찰하고, 말없이 생존 방식에 익숙해 가는 자신.


‘나는… 이런 모습이 되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는 조용히 방바닥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동안 공장에서 보아온 사람들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은 책임을 피해 조심스레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고, 어떤 사람은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필요 이상의 열심을 보였고, 어떤 사람은 버티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무기처럼 사용했다. 공장은 사람들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공간이었다.


‘나도… 나도 지금 변화하고 있구나.’


그 변화가 성장인지 타락인지 아직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늘의 자신은 조금 전보다 더 단단하지만 어딘가는 더 어두워져 있었다. 새벽 3시. 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며 머릿속이 조금 맑아졌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일은… 다르게 보자.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자. 너무 쉽게 흔들리지 말자.’


그 결심은 크고 거창한 다짐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작은 한 걸음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작은 걸음이 후인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될 순간이 된다. 빛이 없다고 해서 완전한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둠 속에서도 흐릿하게나마 길을 찾는 사람만이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 있다. 후인은 그 길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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