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선의에 민원을 거는 인간
호모 퀘룰란스는 라틴어 queri /ˈkwɛraɪ/ *(불평하다, 항의하다)*에서 따온 말로,
도움을 ‘고마움’으로 받지 않고 취약점으로 받아 민원과 요구로 되돌려 통제하려는 인간을 뜻한다.
Homo querulans /ˈhoʊmoʊ ˈkwɛrjʊlæns/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선의는 원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문제는 선의가 증거가 되는 순간이다.
“해줬잖아”는 감사로 끝나야 하는데, 호모 퀘룰란스에게 그 말은 권리로 바뀐다.
그는 선의를 ‘호의’로 받지 않는다. 약속으로 받는다.
약속으로 받은 순간부터, 고마움은 사라지고 요구가 남는다.
이 인간유형은 대체로 이렇게 시작한다.
“아, 잠깐만요. 이건 원래 이렇게 해주시는 거 아닌가요?”
“제가 민원 넣을 건 아닌데…(그런데 넣을 것이다)”
“규정은 규정이고, 사람 사는 게 있잖아요.”
말은 늘 공손하다. 그 공손함이 더 비열하다. 왜냐하면 공손함은 폭력을 숨기는 가장 좋은 포장지니까.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대신 절차를 들이민다.
절차는 사람을 직접 때리지 않아도, 사람을 충분히 망가뜨릴 수 있다. 전형적인 장면은 이런 식이다.
누군가가 선의를 베푼다.
한 번 더 설명해준다. 한 번 더 기다려준다. 한 번 더 챙겨준다.
호모 퀘룰란스는 그 선의를 ‘특별한 도움’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걸 “가능한 서비스”로 기록한다.
가능한 서비스는 곧 “마땅히 제공되어야 할 것”이 된다.
그리고 다음부터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엔 해주셨잖아요.”
이 문장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협박이다.
선의의 흔적을 근거로 삼아, 앞으로의 선의를 의무로 바꾸는 기술.
한 번의 호의가 다음 호의를 강제한다. 그래서 선의는 점점 사라진다.
선의를 준 사람이 손해를 보기 시작하니까.
이 인간유형이 특히 자주 나타나는 곳이 있다. 관리사무소, 관공서, 콜센터, 병원, 학교, 민원창구.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 돌아가는 자리’에서 그는 그 취약함을 정확히 안다.
그곳의 사람들은 대개 반격이 어렵고, 참는 게 업무이고, “친절”이 성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선의를 겨냥한다. 규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겨냥한다.
“사람 사는 게 있잖아요”라는 말로 시작해, 결국 사람을 갈아 넣는다.
그러고는 말한다. “내 권리인데요.” 권리가 아니다. 그건 권리의 모양을 한 통제다.
정당한 민원은 문제를 고친다. 호모 퀘룰란스의 민원은 사람을 길들인다.
누구도 다시는 친절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게 이 인간유형의 성과다.
나는 이 인간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이름이 없으면 우리는 이렇게 말해버리기 쉽다.
“원래 진상은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건 성격이 아니라 방식이다. 선의를 약점으로 바꾸는 방식.
절차를 칼로 쓰는 방식. “지난번엔 해줬잖아요”로 사람의 마음을 계약서로 바꾸는 방식.
당신이 오늘 만난 민원은 무엇을 고치려 했나. 아니면 누구를 길들이려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