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보호는 누군가의 입에서 나올 때, 소유가 되기도 한다.
“나 안 가. 오늘은 여기 있을 거야.”
내 말이 끝나자 어머니의 표정이 잠깐 멈췄다. 놀람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감정보다 절차가 빠른 사람이다. 그리고 그 절차의 첫 단계는 늘 휴대폰이었다.
화면이 켜지고, 연락처 목록이 열렸다. 병원. 응급. 보호자 상담. 시스템을 부르는 손놀림. 시스템이 들어오는 순간, 개인의 말은 ‘증상’으로 바뀐다. 도윤이 내 앞에 섰다. 어머니와 나 사이의 거리를 딱 끊어내는 자세로.
도윤은 낮게 말했다. 어머니가 하려는 건 보호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호입원” 같은 단어로 묶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실 공기가 좁아졌다. 방금 전까지 ‘계약자’라는 칸에서 사랑이 침입으로 번역되는 걸 봤는데, 이제는 ‘보호자’라는 칸에서 내 삶이 소유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똑바로 봤다.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았다.
“너는 지금 위험해.”
위험하다는 말은 언제나 “그러니까 내가 대신한다”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논리는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너를 위해서. 너 자신이 위험해서. 그래서 내가 결정한다. 보호자의 문장으로 내 선택권을 빼앗는 방식.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가 지금 위험해 보이냐고 도윤에게 물었다. 도윤은 대답 대신 내 손을 잡고, 주먹 쥐려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줬다. 생각이 아니라 손이 먼저 무너지는 나를, 도윤은 그 방식으로 붙잡는다.
도윤이 말했다. 위험한 게 아니라 무서운 거라고. 무서운데도 여기까지 온 건 위험이 아니라 용기라고.
어머니는 그 말을 비웃었다. 도윤은 말로 사람을 취하게 만들 줄 알고, 나는 그 말에 약하다고.
그 문장이 정확해서 오히려 분노가 올라왔다. 약점을 안다고 해서 내 삶을 가져갈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무섭다고. 아낌을 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만 그 아낌은 늘 내가 선택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어머니는 다시 ‘자격 박탈’의 단어를 꺼내려 했다. 흥분. 상태. 치료. 그 순간 나는 끊었다. 지금도 선택하고 있다고. 어머니가 내가 선택하지 못한다고 믿고 싶을 뿐이라고. 어머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단정함이 깨지는 순간은 통제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어머니가 낮게 말했다.
“너는… 나 없이 못 버텨.”
협박이 아니라 두려움처럼 들렸다. 그래서 더 아팠다. 하지만 아프다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테이블 위 서류와 사진을 한 장씩 모아 파일에 다시 끼웠다. ‘정리’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정돈’했다. 파일을 닫는 소리가 선언처럼 들렸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내가 이 삶의 보호자야.”
어머니는 잠깐 숨을 멈췄다. 그리고 결국 도윤을 선택하는 거냐고 조용히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도윤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도윤은 그 과정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어머니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시스템을 부르는 손이 멈췄다는 건, 오늘은 다른 방식으로 패배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좋아. 그럼 너희 둘이 감당해.”
어머니는 현관으로 걸어가 문 앞에서 마지막 문장을 남겼다. 나중에 후회해도 다시 정리해주지 않겠다고. 문이 닫히고 도어락 소리가 울렸다. 거실엔 나와 도윤만 남았다. 도윤이 내 얼굴을 봤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말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나는 숨을 길게 내쉰 뒤 다음 증거는 뭐가 있는지 물었다. 도윤은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결혼식 사진.”
그 단어가 공기 속에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증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