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책의 방향, 숫자와 계획 사이
배경 : 나는 지난 10여 년간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다양한 계획을 만들었고, 어촌과 농촌의 미래를 설계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나는 그저 외부인일 뿐이었다. 늘 그들의 곁에 맴돌 수밖에 없었던 나는 늘 이 계획이 정말 이 지역에 도움이 될지를 고민했지만,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지역정책의 세계는 생각보다 화려하다. 두꺼운 보고서, 멋진 비전과 슬로건, 깔끔하게 정리된 파워포인트, 어떤 지역은 지역언론사에서 취재를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뒷모습은 늘 비슷했다.
계획은 많지만, 정장 지역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전입 장려금을 지급한다는 현수막 밑으로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이 줄을 이었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며, 유입인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달라는 공무원들은 그 지역에 살지 않는다.
퇴근시간이면 북적대던 지방의 도시들은 식당조차 9시까지 영업을 하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다.
다문화를 외치지만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침묵하는 교실과 마을회관
보고서 속에서 지표와 수치가 지역을 잘 설명하는 듯 하지만, 현장에서 지역을 움직이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과 기억, 그리고 관계와 아주 사소한 감정들이다. 나는 종종 계획과 현실 사이에 놓인 그 공백을 바라보며 연구자로서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 묻곤 했다.
맨 처음 연평도를 방문했을 때 나는 이 섬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저 멀리 마을의 풍경은 핑크색이 감도는 해안선이 장관이었다. 하지만 마을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가 예쁘게 느꼈던 핑크색은 죽은 꽃게의 사체더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었다.
이후, 포격현장에서 폭격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건물, 휴가를 포기하고 포화 속으로 복귀하는 젊은 해병들, 그 와중에도 배를 타고 터전을 피하려 했던 섬 주민들의 표정까지 생생한 삶의 충격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어촌현장에서 만난 낚시꾼과 어민 사이의 갈등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겐 취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린 현장. 숫자로는 어획량 감소, 관광객 증가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오늘도 그물을 올렸더니 텅 비어 있는 마음으로 남는다.
한때 일상생활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집에서 웅크리고 있던 다문화 아이들은 이제 역으로 한국인 아이들을 따돌리며 학교를 장악했지만,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행정에서 그들은 여전히 지원대상이었고 그들이 유지해 주는 학교와 마을이 없다면 지방의 많은 지역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결국 지역정책이란, 누가 이곳에서 살아도 된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대답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 답을 찾아가는 끝나지 않은 메모들이 채워져야 하는 시간들이다.
연구용역의 세계는 때때로 혼돈의 연속이다. 이미 정해진 용역과 공고문보다 먼저 돌아다니는 소문, 형식적 경쟁과 보이지 않는 형평의 논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팀을 지키려 애쓰는 연구자들.
다른 한편으로는 박사과정의 길 위에서 지도교수를 찾지 못한 채 혼자 논문 주제를 붙잡고 있는 나 자신도 있다. 대학원에서 이론과 방법론을 배웠지만, 실제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언제가 관계와 감정이다.
내가 이 브런치북에 담고자 하는 내용들은 언뜻 보면 각기 다른 이야기 같지만, 그 밑바닥에는 같은 질문이 흐른다. 현장의 연구자로서 한 도시의 시민으로서, 박사학위를 고민하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삶을 꾸려야 하는 생활인으로서 나는 이 네 개의 자리를 오가며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지역 정책의 길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내가 이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거창한 대안이 아니라 지역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졌던 장면들을 조용히 꺼내어 보여주고 싶다. 어떤 글은 내가 마치 이쪽 세계를 고발하는 내부고발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들은 계획은 있는데 왜 지역이 달라지지 않는지, 인구 숫자를 쫓으면서 정작 사람이 머물 이유를 만들지 못하는 정책의 허점은 무엇인지,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이 어떻게 지방소멸을 늦추는 실제 주체가 되고 있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지역개발이란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구나"하고 처음 알게 될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일과 삶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면 된다. 이 글은 거창한 정책론이 아니라, 지역정책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조금 긴 현장 일기일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믿고 싶다. 정책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고,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일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나는 지금도 또 다른 계획의 제안서를 쓰고, 또 다른 마을을 방문하고, 또 다른 회의실에서 새로운 비전을 설명한다. 동시에 노트북을 열어 그날의 장면을 글로 적는다. 이 글은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작은 접점이다.
책상 위에서 쌓여가는 계획과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간격. 그 틈을 조금이라도 좁혀 보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지역정책의 길 어딘가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글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정책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사람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는 이 작은 기록들이 언젠가 당신의 질문과 만나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그렇게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더라고 지역정책의 길에서 서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내가 경험하고 생각했던 실제 현장의, 지역의 모습을 담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