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
배경 : 나는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중장기발전계획,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조직진단, 경영평가 등 다양한 학술연구를 수행해 왔다.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지역마다 지닌 고유한 특색을 경험할 수 있고 그것이 나에겐 또 다른 삶의 동력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다.
□ 여행을 대체할 수 있다.
나는 원래 여행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 돈을 들여 여행을 기억은 별로 없다. 청소년 시절의 여행은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는 것이 전부였다. 구리에서 의정부, 청평, 가평, 양수리와 양평까지 이어지는 버스 노선이 있었고, 주말이면 종점까지 가서 시장을 구경하거나 산책하곤 했다.
내가 지금의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전국을 누비며 자연스럽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따로 계획하지 않아도 공무원들과 함께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었고, 지도선을 타고 바다 위를 달리며 섬을 둘러볼 수도 있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업무 속에서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 전국의 맛집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현지 맛집을 경험하는 것이다. 특히 ‘진짜 현지인 맛집’을 찾는 일은 쉽게 얻을 수 없는 행운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고급 입맛을 갖게 되었다. 유성구의 태평소국밥, 광산구의 명화식당, 단양군의 향미식당, 예천군의 용궁순대, 장흥군의 된장 물회 등 지역별로 맛집들 다니면서 ‘이 집의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또 가고 싶은 음식점을 만날 때마다 이 일을 하는 것이 매우 행복했었다. 우연히 맛집 얘기를 하다가 지인 중 하나가 예천군 용궁순대의 손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너무 많았다. 뿐만 아니다. 연평도에서 포격을 누가 당해봤을까? 대통령이나 군 장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벙커, 원자력발전소의 지휘통제실이나 발전소 내부를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가끔 다른 일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 일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제안서 작성은 때때로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제안서를 쓴다는 것은 내가 해당 지역, 관련 업무에 대해 깊이 알고 있음을 증명해야 하고, 동시에 경쟁사보다 더 탁월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제안서를 잘 써서 수주하면 회사의 성과이지만,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실패하면 모든 책임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너무 싫었다.
얼마 전까지 근무했던 회사는 어촌 특화 연구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태안군에서 종합발전계획 수립 연구를 주워 왔고, 이를 위해 내가 채용되었는데 이 사장이란 자는 종합발전계획을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나를 믿지 않고 이상한 지시만 해댔다. 그러던 중 나의 실력발휘를 위한 기회가 찾아왔다. 광산구의 용역 공고가 올라왔고 회사의 실적은 부족했지만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제안서를 작성했다. 문제는 시간과 인력이었다. 보통 중장기발전계획은 5명 이상이 최소 일주일 넘게 밤낮으로 매달려야 하는 분량의 제안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 회사는 같이 일할 수 있는 인력이 없었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채용해 4일 만에 작업을 끝내야 했지만 사장은 주말근무에 따른 대체 휴무 문제를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쓴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았다. 특히 완성된 제안서에 대해 “제안서의 내용이 엉망”이라거나 “어차피 떨어질 제안서”를 왜 썼느냐고 무시하거나 제본, 제출 비용 등 쓸데없는 비용이 든다며 시비를 걸어왔다. 하지만 결과는 내 의도대로였다. 며칠 후 제안발표 결과 5개 업체 중 정성평가와 가격점수에서 1등에도 불구하고 회사 실적 부족으로 최종 4등에 머물며 수주에 실패했지만 사장은 여전히 내 탓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맛집을 다니며 느꼈던 이 일에 대한 자부심과 쓸데없이 시비를 거는 회사를 저울질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이 좋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