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없다.

인생 헛 산 것일까?

by B급 인생

나는 친구가 없다. 평생을 교유할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했다. 이러다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깊이 생각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는데, 나는 쓸쓸한 노후를 보내다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내 탓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친구의 기준을 너무 이상적으로 설정한 것 같기도 하다. 예컨대 피를 나눈 형제 같은 존재 말이다. 아니면 백아와 종자기처럼 형제 이상의 지음(知音) 같은 관계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존재, 내가 굳이 심정을 밝히지 않아도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돼야 한다고.


춘추전국시대의 이름난 거문고 연주가인 백아와 종자기는 가까운 벗이었다. 종자기는 늘 백아가 연주하는 곡을 듣고 백아의 마음속을 알아채곤 했다. 백아가 산을 오르는 생각을 하면서 연주하면 종자기는 태산과 같은 연주라 말하고,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흐르는 강의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에 백아는 진정으로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知音) 사람은 종자기밖에 없다고 하였고, 이로부터 지음이라는 말은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둘 도 없는 친구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되었다. 이렇게 자신을 알아주던 종자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자신의 연주를 더 이상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며 거문고의 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또 다른 고사성어로 백아절현(伯牙絶絃)이 있다.(출처 : 나무위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었던 상대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때 그 상황에서 날 잘 이해해주거나 처지가 비슷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실망하거나 서운한 감정이 생겨 소원해질 때가 많았다. 내게 무례하게 군다거나 마음에 상처를 준 경우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예 절교 수준까지 생각했다. 그런 순간들을 잘 극복해야 더 발전된 사이로 나아갈 수 있었을 텐데 난 그러질 못했다. 쉽게 상처를 받는 내 기질 탓이다. 게다가 한번 손상되면 관계를 복구시키고 싶은 의욕이나 의지가 좀처럼 솟아나지 않는 꽁한 성격도 한몫했다. 그렇다고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도 않는 성격이다.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마음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홀가분하게 여길 때가 많았다. 이렇게 표현하면 그 상대들이 몹시 불쾌하거나 마음이 상하겠지만 냉정히 내 입장을 밝히자면 그렇다는 취지다.




나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크지 않다. 아주 어릴 적엔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 임지에서 자랐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중학교 이후로 난 외지로 진학했고, 부모님도 생계를 위해 타지로 이사를 했으니 고향을 찾을 일이 거의 없었다. 고향이라고 해도 내 또래 세대들이 갖고 있듯이 그곳이 늘 그립다거나 언젠가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은 생기지 않는다. 지금처럼 카톡이나 이메일이 없고 손편지가 거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던 시절이어서 함께 자랐던 동무들도 내가 그곳을 떠난 뒤로는 서로의 관심이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몇십 년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고 이제 서로 이질적인 사고가 형성되어있을 터이다. 어릴 적 친구는 허물없는 사이라고 해도 불쑥 다시 가까워질 수는 없는 이유다. 이제 와서 딱히 만나고 싶은 생각도 들지도 않는다. 겉으로 친밀한 척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사회적인 인간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관계를 넘칠 만큼 겪어왔고 힘들어했으니 이제 그만 하고 싶다.


우연한 기회에 학창 시절 절친했다고 여겼던 중학교 동창생을 만난 적이 있다. 어쩌다 연락처를 알게 된 게 계기였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내가 살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고 있어 내가 먼저 연락을 했었다. 만나기 전까지 몹시 궁금했고 약속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의례적인 얘기들만 주고받았을 뿐 학창 시절의 깨소금 같은 대화는 없었다. 그럭저럭 두어 시간 보내고 헤어질 땐 뭔지 모를 허전함과 밋밋한 감정이 밀려왔다. 대화 내내 허물없었다는 느낌보다는 서먹서먹한 태도로 일관되었다. 그 이후로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지고 지금껏 궁금증이 일어난 적도 없다. 나름 친했었다고 생각했던 다른 동창생도 무척 오랜만에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저 사회생활에서 흔히 갖는 만남 이상의 정은 느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우연히 연락처를 알게 된 동창생이 있더라도 별로 연락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다. 만나봤자 뻔할 거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살아가는 동안 친구가 없으면 인생길이 외롭다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서 살아가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내 기질과 성격이 사교적이지 못해서 빈약한 교우관계로 외톨이가 됐다는 느낌은 없었다. 누군가는 날더러 '스타(스따)'라고 했다. '스스로 왕따가 된다'는 뜻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꼭 친구가 많아야 삶이 풍요로운 건 아닌 것 같으니 문제 될 것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챙겨야 할 친구가 많을수록 삶이 복잡해지고, 사회적인 배려를 해야 하는 관계망에 얽히게 된다. 다양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면 삶이 풍요롭고 윤택해질 수는 있겠으나 그 반대급부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런 삶에 익숙하지 못해서 감당할 자신이 없다. 또 삶의 방식이나 형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리 볼 수도 있는 문제다. 내가 단출한 인간관계만 있어도 만족하는데 굳이 복잡한 사회관계망에 얽힐 필요가 있겠는가.

친구사이엔 사회적 관계를 초월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무슨 행위를 하든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도 받지도 않아야 한다. 어떤 대화가 오가든 서로 맘이 상하지 않아야 한다. 만나서 조금이라도 맘이 상하거나 부담을 느낀다면 나는 그 관계를 길게 유지하고 싶지 않다. 즐겁게 살 시간도 많지 않은데 뭣하러 맘 상해가며 친구라는 허울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할까? 그럴 바엔 자연인처럼 홀로 고독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게 더 났지 않을까?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제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굳이 하지 않고 속 편히 살고 싶다. 오늘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일 년 이상 통화 한번 하지 않은 자들의 이름을 지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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