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낯을 많이 가렸다. 부모님께서도 아들의 앞날을 몹시 걱정하셨다. 길을 가다 멀리서 낯익은 얼굴을 보기라도 하면 다른 길로 돌아갈 정도였다. 이사 간 동네에서 거의 1년이 다 되도록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엔 무리 지어 다니기 싫어 아프다는 핑계로 소풍이나 수학여행에 빠지기 일쑤였다. 외로움은 늘 내 곁을 지켰다.
직장생활 초기에도 적응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 중얼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회의에선 내 의견이라도 물어볼까 서류에 머리만 박고 있었다. 회식 때는 눈에 띄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동료들보다 먼저 도착하려 애썼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다 파하기도 전에 슬그머니 나와 버리곤 했다. 나는 혼자가 편했다.
사교성을 키우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술이 약한 내게는 퇴근길 가벼운 술자리도 고역이었다. 골프나 당구 같은 사교용 취미는 아예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책 읽는 습관은 일찍부터 생겼다. 뭔가 궁금하면 이 책 저 책 파헤치기를 좋아했다. 영화도 혼자 보고 여행도 혼자 다니는 게 편했다. 고즈넉이 혼자 다니는 등산도 즐겼다. 늘 혼자였지만 그게 외로움인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평생 당신과 함께 살 팔자라고 넋두리를 자주 하셨다. 생전에 여자 친구 한번 사귀지 못하리라 근심이 깊으셨다. 결혼을 하겠노라 선언했을 땐 기적이라도 일어난 양 반색하셨다. 끌려가듯 따라간 대학 첫 미팅 때 말 한마디도 못했던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알 수가 없다. 결혼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다. 아내와 두 딸이 생겨 외로움은 어디론가 달아난 듯했다.
몇 해 전 아내가 한 달도 채 안 된 핏덩이 푸들을 얻어왔다. 아내와 아이들이 아들인양 동생인양 지극정성으로 거두었다. 시큰둥했던 나도 늦둥이를 본 듯 어느새 정이 듬뿍 들었다. 이놈은 사람 틈에 살다 보니 제가 강아지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이다. 하는 짓이 꼭 세 살배기 어린아이 같다. 애정표현이 서툰 중년의 나에게 귀염둥이가 되어 주었다. 내 삶에서 외로움은 지워진 듯했다.
직장에서는 이제 현업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임금피크제 대상에 들어가 조직의 외곽에서 빙빙 도는 신세가 되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퇴직 준비를 충실히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출근하면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추억에 젖어있는 시간만 많아졌다. 뭔가 해보려고 해도 시큰둥하다. 적적하다는 생각이 부쩍 늘었다.
요즘은 집에서도 가족을 마주하기 힘들다. 나이가 드니 살갑게 가족들과 대할 일이 줄어들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두 딸은 두 딸대로 각자 바쁘다. 아내는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맞벌이 직장생활로 놓쳐버린 지난 드라마를 몰아서 보는 모양이다. 태블릿 피시를 끼고 산다. 말 걸기가 조심스럽다. 중년에 들어설 무렵부터 뭘 하던 아내 눈치가 보인다. 애들은 제방에서 틀어 박혀있다. 성년이 된 딸들이니 이제 방에 불쑥 들어가기도 어렵다. 나도 혼자서 저녁시간을 때우려면 이것저것 찾아서 뭐라도 할 수밖에 없다.
귀염둥이 강아지는 늘 아내 발치에 엎드려 있다. 아내가 없으면 딸들 방으로 들어간다. 내 곁으로는 스스로 오는 일이 거의 없다. 아내 곁에 있을 땐 가끔씩 이뻐해 주려고 가까이 가보는데, 슬쩍 눈을 흘기며 못마땅해한다. 쓰다듬기라도 하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이 놈 역시 내가 귀찮은 모양이다. 집에서 조차 누구 하나 내게 별로 관심이 없다.
무뚝뚝한 나도 요즘 부쩍 누군가와 도란도란 대화를 하고 싶다. 이어폰을 낀 아내에게 말을 붙여 보지만 건성으로 대꾸를 한다.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로도 들린다. 작심하고 아내에게 몇 마디 더 붙이니, 불쑥 일어나 딸아이 방으로 피한다. 별일도 아닌데 민망하고 서운하다. 아내 발치에서 꾸벅꾸벅 졸던 강아지마저 아내를 따라 쪼르르 나간다. 더 서운하다. 가슴에 찬바람이 스치며 방안이 휑하니 넓어진다. 살만큼 산 중년에 지워진 줄 믿었던 외로움이 슬며시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