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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Jul 14. 2023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겠지만

긴 이야기지만 결국 타투 했다는 소리.

-타투에도 비건이 있었어요?
-네, 부산에도 있어요. 저는 그 작가님께 받았는데 알려드려요?

그런 얘기에서 아주 사소한 절망을 했다. 정말 방금, 타투 예약금을 입금하고 서점에 들렀으니. 그 타투도 사실은 인스타그램에서 본 도안이 마음에 들어 1분도 고민하지 않고 문의 DM을 넣었고, 내 고민 시간보다 빨랐던 타투이스트의 답장에 홀린 듯 예약을 결심했었다. 나는 매사를 단박에 결정해서, 그런 결정 후에 한발 늦은 행운을 마주할 때 사사로운 절망을 하곤 한다. 방금 예약한 타투보다 마음에 드는 도안을 봤다면 그건 후회였을텐데, 그저 비건 타투를 먼저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절망에서 끝나 다행이다. 어떤 절망은 너무 사사롭고, 사사로워서 안도를 준다. 시작은 절망이나 끝은 안도인, 작은 이야기들에 그치는 매일을 살고 있다. 어떤 트위터리안이 낮에 과일을 들고 수영을 하러 갔다가, 그 다음에 피크닉 매트를 깔고 누워있다가 집에 돌아왔다는 일상을 남겼다. 내 하루엔 그런 낭만은 없었다.

오늘의 시작은 낭만이 아닌 소음이었다.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가던 밤에는 벌레 소음에 잠을 못 이뤘다. 성장기가 끝난지 오래인 지금도 여전히 손톱보다 큰 벌레에 팔짝 뛰며 진땀 흘린다. 그래서 해가 뜰 때까지 뜬 눈으로 지새다가, 타투 공지사항이 문득 떠올랐다.

- 작업 전날 음주를 하지 않고 푹 주무시고 오시면 고통이 덜하고 잉크도 잘 들어갑니다 :)

일찍 자란 말은 없었으니 부랴부랴 푹 자는 걸 택했다. 매일 밤 타투 부작용을 검색하느라 머릿 속은 이미 B급 고어 미장센이 내 팔에 옮겨 붙는 백만 가지 상상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런 두려움은 나를 공지사항을 붙들고 파들파들 떨게 했다. 이렇게 겁이 많은데 무슨 타투를 하겠다고. 웃기는 얘기지만 사실 타투도 겁이 많아서 결정했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을 때, 나는 가을이 되면 서울에 올라가 다시 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쯤 만난 사람들에게 백수건달로서의 스트레스를 징징거렸더니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징징 거려서 달라질 게 없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귀여워 할 위인이 못 됐다. 그러면 그냥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서 나를 깎으며 다음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게 당연지사였다. 그러다 한달 간 부천에 있게 되었고, 머지 않아 그 모든 다짐이 불안감에서 온 오판임을 스스로 밝혀냈다. 나는 집을 떠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라며 조롱하는 이 고리타분하고 퀴퀴한 도시를 너무 사랑했다. 곁을 지키는 바다가 아빠가 사무쳐서 기약 없는 타지 살이를 죽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도시에서 무언갈 해낼 깜냥이 안됐다. 그러니 나는 결국 여길 떠날테고, 그러면서 그저 평생 부산 가고 싶어 죽겠다고, 그런데 죽기엔 너무 겁이 난다고, 그런 애닳음을 안고 고달프게 살아야 할 거 같았다. 너무 사랑하지만 평생 살 수는 없어서 그냥 몸에 새겨버리기로 했다. 혹여나 미래의 타지에 있는 내가 너무 외로워하지 않도록, 언제든 모로 눕기만 하면 눈에 가닿는 곳에 새겨 버리기로.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걱정했고, 그건 사실 과거의 내가 겁이 많아 그랬고, 그런 겁 많은 과거의 나는 결국 부작용에 두려워하는 현재의 나가 되었다가, 너무도 무사히 작업을 받고 마냥 신난 조금 더 후의 현재의 나였다. 그런 '나'들에는 순서나 방향이 없고, 서로 조금 멀다 뿐 같은 것이라서 한결 같이 겁이 많고, 겁 때문에 충동적으로 저지른다. 그런 충동 뒤에는 필히 사사로운 절망이 따르고 가끔은 그 절망을 까맣게 잊을 행운이 들이 닥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너무 대단한 소설을 마주한다던가.

비건 타투의 존재를 알게 됐던 그날 사실은 서점에 어떤 책을 주문하러 갔고, 그 주문 도서가 어제 도착했다. 작업이 예상보다 금방 끝나 시간이 살짝 떴고, 그 책을 받으러 갔다. 사람 손을 타는 얌전한 고양이가 반겨주는 서점에 가서, 서점지기님과 잠시 떠들다가, 책을 잡아 들고 읽었다.

-나는 인생이 한 방향으로만, 그러니까 책장을 넘기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현재에서 미래로만 흐른다는 생각을 버렸다.
-시간은 발산한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 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오늘 종일 하던 생각이 소설에 쓰여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정돈된 문체로 책 안에서 마주할 행운은 또 얼마나 대단할까. 그래서 그 문장을 일기장에 훔쳐 적었다. 훔친 문장을 틀로 하여, 정돈되지 않았던 단상을 담았다. 그렇게 복잡한 단상이 틀에 담기면 나는 또 한동안 가벼이, 그러나 든든히 산다. 이런게 내 요즘 중 가장 대단한 것, 그런 행운.

내 행운에 들떠서 서점지기님께 이 소설의 대단함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여놓았다. 고양이를 안고 있던 서점지기님은 내 얘기를 듣다가 꾹꾹이에 할퀴어졌고, 그 고양이는 맨살을 못 만지게 하는 데에 심통이 나서 새침하게 울어댔다. 내 소설 영업은 아무 필요가 없게 됐다. 고양이가 귀여운게 중요하지, 활자 쯤이야 제쳐 버렸다.



/인용 소설-홈스위트홈,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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