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색에 가까운 진한 색과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림에서 서서히 색이 옅어지고 있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림의 색은 부드럽고 뭉글한 색감을 찾아가고, 화면 속의 정물은 줄이고 줄여 결국 사라지거나 단순해진다.
어떠한 계절과 시기에 유독 자주 쓰는 색이 있는데 뒤돌아 바라보면 그 시절의 나와 닮아있다.
2022년 독일의 여름은 유난히 빛이 가득하고 길고 또 길다. 매일 떠오르는 환한 나날들과 반대로 수십 가지의 바램과 욕심은 가라앉는다.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동안 불안의 에너지를 동력 삼아 채찍질하며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했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지만 호흡이 불안정했던 지난날이었다.
요즘 나의 그림은 진한 색과 강한 선에서 옅은 색과 경계가 애매모호한 면으로 향하고 있다. 별다른 목적이나 욕망 없이 평온을 유지하려 하는 요즘의 나처럼.
정말 오랜만에 일러스트를 그렸다. 지난 주말 산책길에 만난 동글동글한 나무가 퍽 귀여웠다.
저렇게 동글동글 부드럽고 명확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경계의 삶이 문득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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