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일은 날씨가 오락가락이다. 한 달 내에 모든 계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변덕스럽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가 3월 말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화창해 기분 좋아서 밖에 나가면 갑자기 손톱만 한 우박이나 굵은 소나기가 우수수 쏟아져서 너무 놀랬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이런 변덕도 나름 매력 있게 느껴진다. 꽤나 따뜻하다가 이번 주부터 갑자기 쌀쌀하고 바람이 많이 불지만, 4월 초부터 2주가량쨍한 햇빛의 아름다운 봄을 만끽했다.
주말에는 오래오래 걸으며 마인강 산책을 했다. 먼 거리도 아닌데 마음을 내지 않으면 집에서 나오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요즘은 '굳이'의 마음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귀찮고 피곤해도 그래도 '굳이' 어딘가를 다녀오거나 무언가를 했을 때 삶이 다채로워지는 것 같다. 삶이 건조해서 말라 부서지지 않게 챙기는 것도 나를 위한 사랑의 행위가 아닐까 싶다.
봄에는 저런 진분홍의 벚꽃이 중간중간 곳곳에 피어있다. 색이 진하고 통통해서 참 예쁘다. 한국은 더 연하고 꽃잎이 얇았던 것 같다. 예전에는 가을, 겨울이 나의 최애 계절이었는데 봄의 아름다움을 알아버렸다.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찬란한 봄을 노래했는지 너무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꽃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는 마음이 설레일정도로 행복하다. 막 자라나는 연초록의 사이에서 저마다의 색으로 한 철 피워내는 꽃이 뭉클하기도 하다.
길 가다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를 보고 샛길에 빠져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남의 정원에 딱 한 송이 핀 튤립이 귀여워서 바라보기도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에 나는 너무나 무거웠다.
안 좋은 습관과 생각 없는 행동은 삶의 방향성을 뭉뜽거린다.
부활절 연휴에 아무 생각 없이 먹은 음식들은 살이 되었고 최근 9개월 내 최고 몸무게를 빠르게 기록했다. 보통 이틀정도 덜 먹으면 몸무게가 되돌아가는데 이번에는 복귀가 되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는데도 맛이 있을 것 같아서 먹고, 그냥 집에 놓여 있으니까 먹고, 짜증 났는데 먹으면 기분 좋을 것 같아서 먹고 (예를 들어 와플), 먹고 싶어서 먹고 (예를 들어 와플..) 그렇게 2주를 보냈다. (와플은 2주 동안 총 5번을 먹었다. 하하) 입의 감각과 회피의 마음, 짜증의 보상으로 막무가내로 먹었던 나를 반성하며 3일 물단식을 하기로 했다. 솔직히 나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다. 중학생 때 7일 레몬디톡스를 도전한 적이 있는데 이틀차에 치킨 사진을 보며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온갖 번뇌의 마음에 중도실패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 외로 잘 견뎌냈다. 단식은 금요일 이른 저녁부터 시작했다. 토요일에는 무언가를 씹는 행위가 없으니 어색하고 뭔가 공허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피로했다. 일요일에는 아틀리에를 갔다가 밀린 집안일도 하고 40분 간의 긴 산책을 했다. 하지만 활동량이 많았는지 아님 산책할 때 햇살이 뜨거웠는지 중간에 메슥거리고 휘청거릴 것 같은 어지럼증이 있었다.(충분히 소금을 섭취했는데도!) 힘이 없어서 집에 와 짧은 낮잠을 잤는데 선잠을 자면서도 눈앞이 빙빙 도는 어지러움이 있었다. 두려운 마음에 견과류 한 줌을 먹어줬다. 이틀도 안 됐는데 이런 심한 현기증이라니 조금 우스웠다. 다음 날 월요일에는 재택을 하는데 아무래도 번역일이라 머리가 안 돌아가고 또 빙빙 도는 어지러움이 있어서 견과류 한 줌을 한번 더 먹어주었다. (아무래도 일할 때나 활동량이 많은 사람에게 단식은 무리일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보식을 미리 만든다고 닭다리를 고았다. 그런데 그 따뜻한 국물이 갑자기 너무 먹고 싶어서 엄청 고민하다가 결국에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닭고기도 소량 천천히 먹어줬다. 단식을 깨울 때는 야채 수프나 간을 적게 한 고기국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한다. 간을 거의 안 했는데도 단식을 해서 그런가 고유의 맛으로도 풍미가 느껴졌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뭔지, 오랜만에 무언가를 먹으니까 또 그리고 계속 먹고 싶다는 충동의 마음이 막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말짱 도무룩에 이런 순간의 감각을 추구하는 마음이 너무 탐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30분을 기다리니 소량의 수프였지만 배는 차고 충동은 사라졌다.
72시간을 계획했는데 아쉽게도 65시간 단식으로 끝마쳤지만, 그래도 처음 해보는 단식에 의의를 둔다. 살은 대략 3kg 정도가 빠졌다. 안 좋은 습관을 과감히 끊어내고 싶을 때 단식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도저도 아닐 때 뭔가 애매할 때는 강경한 행동이 새로운 시작에 큰 힘이 되는 듯 같다. 현재 위는 다시 많이 줄어서 앞으로 적절한 식사양과의식적인 건강한 식단으로 2024년을 보내려 한다.
그리고 단식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즐겨했던 로얄매치라는 게임도 삭제했다.
때는 1-2년 전, 원래 게임을 하지 않는 내가 지하철에서 허접한 게임 광고를 보고 궁금해서 한번 다운로드해 봤다. 분명 광고에서는 저 오른쪽의 왕이 매달려서 도움을 구하고 있는 허접한 그래픽이었는데 막상 깔아보니 색색깔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겼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캔디크러쉬? 와 같은 게임이라고 한다.) 폭탄이 터질 땐 진동과 함께 화려하게 빵빵 터지면서 뭔가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는 미술사 수업을 들으면서 몰래 할 정도로 중독이었고, 1년 뒤에는 습관이 되었다. 그 이후에는 뭔가 질려서 금요일 밤이나 주말에만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했다. 그렇게 8000단계를 넘었다... (스크린샷을 찍어뒀어야 했는데 아쉽다.) 그리고 그렇게 궁금했던 로얄리그에 최근에 도달했는데 내 원래 단계는 사라지고 라운드 1로 바뀐 뒤 뭔가 크게 현타가 왔다. 안 그래도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기 싫을 때 무의식적으로 로얄매치를 켜고, 사사로운 짜증이 들 때도 그런 감정을 회피하고 싶어서 로얄매치를 켰었다. 나에게 로얄매치는 순간의 도피를 위해 현실의 과제를 조금씩 미루게 되는 원인이기도 했기에 -안 그래도 그만해야지 의식하고 있었는데 (그만두지 못했었지만) 새로 시작된 라운드 1의 숫자를 보고, 그리고 로얄리그 라운드 1이 기존 8000단계까지 별다른 차이점이 없어서 끊임없는 윤회의 늪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단식과 함께 1-2년을 해왔던 게임을 삭제했다. 삭제하고 아무 생각도 안 들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약간의 그리움이 생긴다. 나 이 게임 되게 사랑했네.....
무튼..! 이번 주 여름학기 개강했고 일도 여전히 병행하고 있으니 안 그래도 바쁜데 현생을 잘 살아보자는 마음이다. 내 인생에 더 이상의 회피는 없다 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