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게 살 일도 아닙니다.
L ,
그래요, 나도 독해보려고 했지요
그런데 당신도 나처럼 술을 한 잔 해 보면
세상이 갑자기 훤해져요
독한 것은 맛이 없어요
돼지를 잡으면서
아버지가 그랬어요
짐승도 죽을 때 독기를 품는 법이다.
그 고기 먹으면 독을 먹는 법이지
죽은 고기도 독이 날아가면 살이 연해지는 법이다
아버지 말씀 뒤에
죽은 돼지 앞에 서면 독기가 싸늘하게 새어 나오는 걸 느꼈어요
나는 지금 포도주를 마셔요
술처럼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독기는 사라지고 내 몸 위로 부는 선량한 바람
아버지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설렁설렁 제 풀대로 살다가는 거지
흔들리고 싶을 때 흔들렸다가
날아가고 싶을 때 날아갔다가
돌아서 독기 다 내놓고 술로 적셔두면
하늘길도 출렁출렁 그렇게 살다가는 거란다.
L ,
'늑대와 춤'을 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그 처자 이름이 "주먹 쥐고 일어서" 였나요?
아 재미있는 이름이었어요. 주먹 쥐고 살아가야 할 일들.
하지만 당신, 나는 이렇게 불러줘요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웃자고 하는 이야기예요
죽자고 사랑하거나
죽자고 잊어보거나
하여간 독은 품을 일이 아니라는 것
아버진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잠이 든 듯 고요히 가셨지요
술향기도 없이, 독기도 없이 피시식 웃는 모습이었어요.
독하게 살지 말아라, 마지막 말씀인 듯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