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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엘에게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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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Feb 28. 2024

어젯밤 꿈에


어젯밤 꿈에

편지를 받았어요.

믿을 수 없어서 읽고 또 읽다가

그 편지 가슴에 품고 당신을 찾아 나섰어요

달은 흰 눈 속에 박혀

창백하게 빛나고

숲은 일제히 침묵하였지요

가다가 부엉이를 보았고요

가다가 줄이 끊어진 연도 보았고요

가다가 마귀할멈도 보았는데요.

가면 갈수록 나는 작은 여자아이가 되어 갔어요.


L


꿈속에서 당신은 머나먼 곳에 계셨는데요.

생각에 그곳은 따듯한 곳일 거라 믿었지요.

나는 성냥팔이 소녀나 모 그쯤 작아졌을 거예요

그때 당신이 나타났아요.

당신의 웃음은 잘게 부서져 온통 반짝였어요

당신은 또

오다가 까치 두 마리 보지 못했냐고 물었어요.

오다가 산토끼 두 마리 보지 못했냐고 물었고요

오다가 노루랑 사슴은 보지 못했냐고 물었어요.

나는 도리질을 했어요.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요

숨 쉴 수도 없었어요

당신이 없었는걸요

당신은 내 가슴을 가만히 열어 주었어요.

가슴에서 까치 두 마리가 푸득 날아가고

가슴에서 산토끼 두 마리가 뛰쳐나가고

가슴에서 노루랑 사슴들이 껑충이며 튀어나왔지요

나는 가슴에 묻어 둔 편지를 두리번두리번 찾았는데요.

오히려 당신은 슬픈 눈빛으로.

어째서 이렇게 작아졌냐고 물었어요.

나는 거짓말을 하였지요.

난쟁이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오다가 개구리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마귀할멈과 마구 싸우다가 이렇게 작아졌어요.

당신은 더욱 슬퍼하였어요.

내가 사랑한 당신이 아니었군요.

내가 그리워하던 당신이 아니었어요.

나는 편지를 잘못 보냈는걸요.

과거에도 없고 현재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 

낯선 사람에게 보냈나 봐요

당신은 냉정하게 돌아섰지요.

당신이 사라진 하얀 들판에

달도 별도 사라진 하얀 들판에


L


사랑하는 당신은 보이지 않고

편지만 다시 돌아와 백지로 접혀 있었어요.

어젯밤 꿈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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