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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엘에게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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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Mar 02. 2024

꽃잎은 본디


꽃잎은 본디 



먼 옛날,

꽃잎은 본디 초록잎이었데요

표정 없고 수다스럽기만 했던 잎사귀들 말이에요

그런데 곤충과 잎이 깊은 관계가 되고 난 후,

잎은 꽃이 되었지요

곤충이 좋아하는 색을 갖고

곤충이 좋아하는 향기를 갖고

곤충이 좋아하는 웃음을 갖은 뒤, 날개 같은 꽃잎을 가졌다는 거예요.


나는 원래 블루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나는 또 사색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무런 아픔 없이, 명랑하고 수다스럽던 나의 잎사귀들은 

자꾸 들떠서 날아오를 것 같은 날들이었지요



그러나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특별한 곡조가 갑자기 찾아왔어요.

곡조의 모든 가사는 당신의 이름이 되었지요

날랜 천둥번개, 바람, 흰 고니, 조각구름 하나, 푸른 하늘, 그 바다 블루

아, 꿈속에 보았던 왕오색나비

나비 따라 움직이던 꿈속 가득 쏟아지던 꽃잎들

무덤마다 담긴 씨앗들이 운명처럼 뿌리를 내려

원한 적도 없는데, 날마다

눈 먼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세월을 덧없게 하더니

이내 잎사귀던 시절을 잊고 맙니다.

당신 그곳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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