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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May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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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복,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지성사, 2024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친절은 노쇼였다." -p.37.


대학원 시절 이야기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던 대학원은 다른 학교 또는 학과와는 다르게 좁은 연구실에 교수와 전담 조교가 함께 생활하는 구조였습니다. 교수님들 연차나 수업량에 따라서 지급되는 연구보조비가 달랐기 때문에 중견급 이상은 방에 두 명이 넘는 조교들이 수업과 연구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연구하는 분야가 상대적으로 마이너 한 분야이거나 연차가 얼마 되지 않은 교수님의 경우에는 대학원생 한 명이 모셨지요.


제가 모셨던 지도교수님은 당시에도 제법 중량감이 있으셨기에 조교가 두 명이었습니다. (여기서 중량감이란 체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 마셔요. 대체할 수 있는 유사한 단어로 존재감, 영향력 등이 있겠어요.) 맡고 계셨던 일이 적지 않아서 가끔 일손이 부족하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박사 과정에 있는 대학원생들도 불러와야 했습니다. 수업도 많았지만 두 명이서 분담해 어찌어찌 일을 해결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 연구실은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조교 혼자서 교수님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제가 있던 연구실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노트북이 갑자기 켜지지 않는다거나, 무거운 것을 옮겨야 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말이죠. 물론 "저 좀 바쁜데......"라거나 "저도 그런 거 잘 몰라요."라고 말하며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착한 사람 증후군'이 고질병이었기 때문에 늘 성실히 도왔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서로 자주 연락하며 안부를 나누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어찌 지내며 사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SNS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조용했지만 능력 있고 밝은 미소를 가진 친구였기 때문에 잘 지내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내오는 단어 하나하나에 외로움이 묻어있었습니다. 그놈의 고질병이 또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일하던 곳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자고 약속을 잡았지요.


역시 눈빛이 너무 건조했어요. 제가 공기 중으로 내뱉은 문장들이 품고 있던 온기와 습기를 모조리 빨아드리는 듯했어요. 10년 넘게 이어왔던 다른 사람과 관계가 파국을 맞이해 힘들어했어요. 제가 점심을 샀고, 며칠이 지난 다음에는 그 친구가 크리스마스 연주회 티켓이 생겼다며 초대를 했지요. 즐거웠지만 그 친구 눈빛은 여전히 메말라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 해 마지막날 밤, 그 친구는 말라비틀어져 보이던 눈에서 오히려 눈물을 토해내며 전화를 해 왔어요. '견디기 너무 힘들다'라고 말이지요. 아마 그 친구 눈에는 자기만 빼고 세상 사람들 모두 행복한 것 같아 보였나 봐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도 그 행복한 사람들 무리 속에 들어가 온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을 거예요.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몇 송이 꽃들을 묶어 들고 찾아가 토닥여 줬어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그 행복한 사람 무리 속으로 돌아간 듯했어요.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서는 약속했던 날 이른 아침, "다른 일이 생겼어요."라는 앙상하고 마른 나뭇가지 같은 문장을 던져두고 말이에요. 거칠고 황량한, 우울한 사람들이 버려지는 들판에 우두커니 저를 그냥 세워두고 말이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내게 남긴 친절이었어요. "고맙다, 친구야. 그날 나타나지 않아 주어서."




류기복 작가는 익숙하면서 차분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재능이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가 없을 텐데 어찌 그런 시선을 삶 구석구석에 잘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옷깃을 사부작사부작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걸 모두어 풀어내는 좋은 작가입니다.


하지만 약속해 놓고 나타나지 않아 주어 고마운 사람이 있다는 문장은 너무 아팠습니다. 우리 곁에서 없어졌으면, 아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편이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라니요.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 '착하다' 라거나 반대로 '악하다'라는 것도 결국 비교 대상이 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형용사입니다. 만일 버려진 들판에 혼자 외롭게 서 있다면 그런 말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단어가 됩니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하고 평온하고 아늑한 것은 모두 그 사람 덕분입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나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고, 평온하지도 불안하지도 않고, 아늑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외로울 뿐입니다.


내게서 불행과 불안과 불편을 가져가 준 그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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