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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목 Sep 15. 2023

끝없는 오프로드

차가 가는 곳이 곧 길

생애 첫 해외여행을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두 번째 해외여행을 고등학교 졸업 이후 패키지여행으로 갔었다. 일본과 싱가포르로 떠났던 두 번의 여행은 함께한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남았지만, 정해진 일정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 맘에 들지는 않았다.


도쿄에서의 수학여행 때, 와세다 대학과 지질공원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수학여행이라는 말마따나, 배움이 목적인 여행이었고, 과학고등학교이기 때문에 두 장소가 일정에 들어간 것이 이해가 전혀 안 가지는 않았다. 특히, 와세다 대학은 일본의 유명 대학은 어떠하고, 그곳의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뜻깊었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름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지질공원은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기 힘든 곳이었고,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일정에 포함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심지어 지질공원에서 점심으로 먹었던 도시락은 정말 별로였다. 정확히 어떤 음식들이 그 도시락을 채우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나친 짠맛과 단맛이 공존했다는 것만큼은 기억이 난다.


한 학교의 한 학년 전체가 움직이는 수학여행 특성상, 다수를 수용할 수 있는 곳에만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다. 유일하게 자유가 허락되었던 하라주쿠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친구들과 함께 식당에 들어가 먹었던 모둠 튀김이 가장 맛있었다. 오사카, 교토에서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직접 먹어보기 전까지, 일본 현지의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줄 알았다. 얼마 전 다시 도쿄 땅을 밟았을 때도, '다시'라는 말을 쓰는 것이 무색할 만큼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때는 이토록 멋진 건축물과 거리가 도쿄를 가득 채우고 있는지, 구석구석에 이토록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첫 해외여행 때 진짜 도쿄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버스 한 대만 움직이는 싱가포르에서의 패키지여행은 버스 여러 대가 움직이는 수학여행에 비해선 자유로웠지만, 많은 것들이 통제된 것은 비슷했다. 한식당과 쇼핑센터, 그 지역을 제대로 음미할 여유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던 일정. 그리고 내가 가고 싶었던 몇 개의 여행지를 일정에 넣기 위해 현장에서 추가로 지불해야 했던 사전에 고지받지 못한 비용.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면 되었기에 편했고 추억으로 남은 순간들도 더러 있었지만, 나는 싱가포르에서 자유여행이 허락되었던 그 딱 하루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정신없이 놀았던 그날. 마리나 베이 샌즈 쪽으로 이동해 아름다운 야경을 눈에 담고, 칠리크랩과 시리얼 새우를 흡입했던 그날. 고인 빗물에 발이 푹푹 잠길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나는 그날이 가장 좋았다.


첫 두 번의 해외여행에서 느꼈던 실망감과 싱가포르에서 잠시 맛봤던 자유여행의 매력은 나의 여행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놨다. 그 뒤에 떠났던 여행들은 줄곧 자유여행이었다. 준비하고 계획하는 과정부터 수차례 삐걱거렸지만, 그때의 설렘이 좋았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설렘이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 이국의 땅을 밟자마자 마주하는 낯선 공기와 온도, 언어의 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도 좋았다. 낯섦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와중에 마주하는 것들은 이국의 향기를 더 진하게 풍겨온다. 목적지로 향하는 교통편을 겨우 찾아 타서 정신없는 와중에 창 너머로 보이는 익숙지 않은 풍경에 마음을 뺏기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다가도 웃음 짓는 그 모든 순간들은 여행의 온갖 것들을 직접 행할 때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우린 모두 어딘가로 떠나면서 무사귀환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목표일 뿐이고, 아마도 우리는 그 낯선 땅에서 마주할지도 모를 의외의 순간을 기대하며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무사귀환이 정말 여행의 주목적이라면 정해진 일정을 따라가는 패키지여행만 한 안전한 선택지가 또 없겠지만, 예상치 못한 의외의 순간을 기대하는 것이라면 직접 가고 싶은 곳을 골라 찾아가는 자유여행이 적절한 여행의 형태이다. 그리고 진짜 그 장소를 느껴보고 싶은 것이라면, 유명 관광지들을 찍고 오는 형태의 패키지여행보다는, 여유를 갖고 거리 곳곳을 직접 걸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장소에 매료된 나머지 오래 머무르느라 일정의 몇 부분을 빼먹기도 하는 자유여행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몽골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전까지의 여행과 달랐다. 몽골에서 내가 꿈꾸던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기 위해선 현지 게스트하우스에서 진행하는 투어에 참여해야 했다. 긴 이동거리, 심지어 대부분이 오프로드인 몽골은 그렇게 여행해야만 했다. 자유여행을 고집하던 나였지만 허락된 선택지가 없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고비 사막 투어를 할 것이냐, 홉스골 호수 투어를 할 것이냐, 그뿐이었다. 그래서 몽골에 가기 전, 현지 게스트하우스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 외에는 딱히 준비할 것이 없었다. 원래부터 고비 사막 투어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목적지를 정했고, 그 해 8월, 친구 두 명과 함께 울란바토르로 향했다.


울란바토르에 도착한 뒤, 투어를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운전기사 한 분과 한국어를 꽤 능숙하게 구사하시는 가이드 한 분을 소개받고 난 뒤, 푸르공에 짐과 몸을 실었다. 꿈에 그리던 고비 사막 투어의 시작이었다.


몽골 여행 때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다. 그 긴 시간이 한국의 도로 위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면 힘들고 지루한 시간이 되었을 테지만, 몽골의 오프로드는 한국에서 잘 닦인 도로 위를 달리는 것과는 여러모로 차원이 달랐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푸르공의 바퀴가 잘 닦인 도로 위에서 오프로드로 옮겨진 순간 처음 느낀 덜컹거림은 상상 이상이었다. 달리는 차 안이었지만, 승차감이라는 단어를 가져오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오히려 디스코 팡팡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원래 멀미를 해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너무 심하게 덜컹거리다 보니 손잡이를 붙잡고 버티기 바빠서 멀미가 찾아올 틈이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달까.


그저 덜컹거리기만 했다면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심을 빠져나온 이후, 길뿐만 아니라 보이는 풍경도 달라졌다. 드넓은 땅과 그 위에 자리 잡은 몇 개의 게르, 온갖 동물들과 동물들을 몰고 있는 사람들이 차창을 채웠다. 광활한 평야가 눈앞에 처음 펼쳐졌던 그 순간, 내가 바라던 그곳에 왔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산과 빌딩이 즐비한 우리나라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풍경이었고, 내가 바라왔던 풍경이었다.


우리는 외국의 요소들이 새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 더 충실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귀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고향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중략)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


살다 보면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번잡한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안 그래도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러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마저 내면의 상황과 비슷했다는 점이 날 짜증 나게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따금씩 그저 바다와 하늘이 내 시야를 온통 채우는 수평선을 쫓아 해변으로 향했다. 탁 트인 풍경을 볼 때마다 나를 짓누르던 일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져서인지, 수평선을 바라볼 때마다 평화로움이 어느 때보다 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몽골에서는 굳이 수평선을 쫓을 이유가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토록 평화롭고, 단순해졌던 순간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깥의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았던 차 안에서의 시간이 무척이나 좋았다. 끊임없이 보이는, 끝을 모를 지평선에 이제까지 쌓였던 갈증이 해소되는 것을 넘어서, 온몸 구석구석이 상쾌해지는 듯했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잘 닦인 도로는 그곳에 거의 없었다. 푸르공의 바퀴가 그려낸 모든 선들이 곧 길이었다. 마치 미지의 바다를 항해했던 마젤란이 된 것만 같았다. 땅 위에 있는 매 순간, 어디로 갈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이 항상 존재했다. 풍경이 어떻게 달라질까, 또 얼마나 심하게 덜컹거릴까 하는 기대감도 물론 함께했다.

 

몽골 여행을 다녀온 이후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나라에서 오프로드를 또 경험할 수 있었다. 2020년 여름, 외가 식구들과 함께 강원도 오대산으로 향했다. 스님이신 삼촌이 당시에 계셨던 북대 미륵암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월정사를 지나서 한참 들어갔어야 했는데, 잘 닦인 도로가 아닌 산길이었다. 삼촌이 끌고 오신 큰 차에 모두 탄 뒤에 산길에 올랐다. 2년 만에 마주한 오프로드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달라진 점은 그때는 덜컹거림과 광활한 평야가 짝이었다면, 이번에는 덜컹거림과 푸르른 산이 짝이 되었다는 것.


아마도 난 덜컹거리는 오프로드를 달릴 때마다 몽골에서의 시간을 떠올리지 않을까.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보여줬던, 어디로 갈지를 예상할 수 없었던 몽골의 푸르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몽골 여행 내내 탔던 푸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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