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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152화 - 움직임 멈춘 채 남은 건 적[막]

모든 흐름이 잦아들고 나서야 비로소 남은 것은

by 마음이 동하다
[꾸미기]152-1.jpg


시작된 장마 흐린하늘에 서

맑았던날 무언가 감춰진 내

해무가 밀려와 시야덮은 장

파도는 말없이 발치에 나지

물고기 떼가 수면을 달막달

조그마한 섬이 수평선에 조

멀리 불빛 숨죽이며 까막까

움직임 멈춘 채 남은 건 적

*달막달막: 가벼운 물체 따위가 잇따라 들렸다 내려앉았다 하는 모양.

*조막: 주먹보다 작은 물건의 덩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까막까막: 작고 희미한 불빛 따위가 잇따라 꺼질 듯 말 듯 한 모양.
[네이버 어학사전]



장마가 이제 시작되어 흐린 하늘은 무언가를 예고하듯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멀리 수평선 위로 피어오르는 구름은 거대한 연극의 서막처럼 느껴졌다. 고요함을 가르며 드러난 풍경은, 그저 맑기만 했던 낮의 하늘 아래 감춰져 있던 감정의 내막을 하나씩 드러내는 듯했다. 이내, 안개처럼 밀려온 해무가 온 풍경을 덮어버렸고, 마치 진실을 가리고자 펼쳐진 자연의 장막처럼 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모든 소리는 잠잠해지고, 파도조차 목소리를 죽인 채 모래 위를 스치는 소리는 그저 나지막하게 울릴 뿐이었다.


그 순간, 잔잔한 수면 위로 물고기 떼가 올라와 톡톡 부딪히며 떠오르고 가라앉는 모습이 보였고, 그 움직임은 마치 조용히 반응하는 마음처럼 달막달막했다. 저 멀리,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 조그마한 섬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 서 있었고, 그 존재감은 손바닥만 한 기억처럼 조막스러웠다. 희미한 불빛은 밤과 안개 속에서 꺼질 듯 켜질 듯 살아 움직였고, 그 빛은 까마득한 어둠 속을 더듬는 눈빛처럼 까막까막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흐름이 잦아들고 나서야 비로소 남은 것은, 아무 소리도, 아무 감정도 닿지 않는 깊은 적막뿐이었다.


[꾸미기]15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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