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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Mar 23. 2023

해내려는 마음은 늙지 않는다.

습관은 엄청난 관성의 힘으로 자신을 끌고 다닌다.

    직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 직원들은 기둥 옆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훑어본다.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이날 발표자조차도 가장 의아해 했었다는 결과순위다. 적막한 어둠사이로 빔 슬라이드에 공개된 순위표엔 내 이름이 2위에 올라왔다. 나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풋~’, ‘내가?’, ‘2위?’ 그것도 체지방을 감소시키고 골격근량을 증가시켜야 하는 운동 프로젝트에서???



    내 직장은 병원이다. 중소병원에 직원 수가 350명이 넘는다. 병원 특성상 환자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본인의 건강을 놓치기 쉽다. 직원들의 건강과 체력 향상 및 병원생활에 활력소를 제공하고, 건강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새로고침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단순히 체중감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걷기, 체지방률, 골격근량 3종목의 5개 항목 포인트 합산으로 순위를 정한다. 건강한 조직문화의 일환이다. 작년 첫 회 때 반응이 좋아 올해 초 2회를 진행했다. 워낙 운동에 관심이 없었지만 두 번째엔 자의반 타의반 신청했다. 그렇게 두 달간 자신과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나는 평생 절대로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인가?’
‘만일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오, 라면 지금 당장 시작하면 어떨까?’
_팀 페리스《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토네이도)



    2회 참가자는 100여명이 넘었다. 단톡방이 개설되고 걸음 수 측정 어플에 가입한다. 각자 어떻게 운동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매일매일 측정되는 걸음 수는 공유되었다. 첫날부터 경쟁이 치열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작년 여름부터 출근 전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하던 터였다. 부지런하지 못해 일주일에 2~3회 정도밖에 가지 않고 있다. 걸음수도 늘릴 겸 한 손에 휴대폰을 꽉잡았다. 러닝머신과 한 몸이 되었다. 1월초라 바깥은 겨울이다. 새벽 실내공기마저 차가운 그 추운 날 반바지에 반팔입고 무단히도 걷고 뛰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개운한 몸으로 출근했을 때 걸음 수는 만보에 육박했다. 스스로를 칭찬했다. 책상에 앉아서 업무 보는 사무직이라 걸음 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날 밤, 자기 전 걸음 수 어플을 확인했다.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치열했다. 내 걸음 수는 많아야 12,000~15,000 이었는데 저녁형 인간들의 움직임은 상상 이상이었다. 첫날부터 2만보, 3만보 넘는 직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을까?]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손목이 아팠다. 마우스 탓일까? 키보드 탓일까? 곰곰이 생각하니 걸음 수 측정하려고 휴대폰 부여잡은 탓이다. 러닝머신 50분간 휴대폰 꽉 잡았던 그 손모가지다. 오늘은 반대 손으로 잡아가며 아침 일찍 만보를 달성하고 출근했다. 잠시나마 어플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어둠이 찾아오면 그들이 또다시 활동한다. 3만보 괴물, 4만보 좀비가 등장한다. 이틀 만에 직감했다. [이거이 안괜찮다]


    그 날 이후 나는 걷기분야에 순위는 내려놓았다. 가끔 러닝머신 할 때도 휴대폰을 부여잡지 않았다. 1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어떤 주에는 아침 헬스장 4번간 주도 있었지만, 겨우 1번밖에 못간 주도 있다. ‘새로고침 프로젝트’는 시작했지만 한 달 동안 일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따로 하는 운동도 없었고, 따로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들지 않았다. 죄책감도 없었고, 적극적인 액션 또한 없었지만, [여전히 괜찮았다]



    2월 초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알게 된 도서 ‘시작의 기술’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다른 습관 길들이기에 대한 책과 비슷하다. 습관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읽어봤지만 그 책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중반쯤 뼈 때리는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편안하게 느끼는 것만 고수한다면, 늘 해오던 일만 한다면 사실상 당신은 과거에 사는 셈이다.’ 여느 자기계발서 문구와 별다를 것 없었는데, 그날의 감정이 달라서일까? 가슴깊이 와 닿았다. 편안한 것만 고수하고, 늘 하던 일만 하면서 무엇이 달라지길 바랐던 걸까? 몸이 편한 것만 찾으면서, 늘 하던 패턴대로 움직이면서 내가 건강해지길 바랐던 걸까?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작은 일’들을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습관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습관은 엄청난 관성의 힘으로 자신을 끌고 다닌다. 문제는 얼마나 좋은 습관을 만드느냐다. 작은 노력들을 착실히 쌓아나가며 성공할 수밖에 없는 습관으로 체질화해야 한다.
_류량도《우리가 꿈꾸는 회사》(쌤엔파커스)


    조금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 습관에 관한 책들에서 무수히 강조하는 게 있다면 작게 시작하는 것이다. 스몰스텝이다. 가령 팔굽혀펴기 1개, 윗몸일으키기 1개 등 너무 작아서 이것으로 운동이 될까 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뇌가 인지할 때까지 말이다. 나는 결심했다. 매일 아침 눈뜨면 화장실도 가기 전에 윗몸일으키기 30개랑 팔굽혀펴기 10개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밤새 내 방광에 고였던 액체를 빼기도 전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혹시나 소변을 보고나면 그 잠깐 사이에 정신이 맑아져서 내 자신과 타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3주간 빠짐없이 윗몸일으키기 30+α, 팔굽혀펴기 10+α를 했다. 새벽녘 터질 듯 한 방광을 가둬가며 조금씩 늘여갔다. 2월말이 되었고 인바디 측정을 했다. 2달 사이 체중은 1.5kg 밖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체지방량이 4kg이 줄었고, 골격근량은 1.9kg이 늘었다. 놀라운 성과다. 걸음 수 측정에서 비록 0점을 받았으나 남은 항목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최종결과 남자부문 2위를 차지했다. 수많은 젊고 건장한 치료사 선생님들을 제치고 말이다.



    나는 그들보다 유리한 조건이었는지 모른다. 40대 중반의 전형적인 배불뚝이 아저씨에 몸매다. 군대 전역이후 20년 넘도록 운동과 사이좋게 담쌓았다. 출렁이는 뱃살, 조금만 신체에 압력을 가해도 효과가 나타났던 거 같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결과다. 그리고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어떻게 행동할지는 항상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건강해지는 것이 목표라면 해야 할 일은 대개 간단하다. 따라할 수 있는 계획을 고른다. 어떤 계획이든 괜찮다. 그런 다음 ‘5,4,3,2,1’ 숫자를 거꾸로 세고 바로 시작한다.
_멜 로빈스《5초의 법칙》(한빛비즈)


    ‘새로고침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게 2위에 해당하는 상품과 골격근량은 작은 선물에 불과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하면 되더라는 자긍심이 더 큰 선물이다. 건강에 대한 인식변화에 습관까지 얻었으니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아직도 남들보다 유리한 신체 조건이다. 뱃살도 허리둘레도 여전하다. 걱정하진 않는다. 더 좋은 습관으로 제3회 프로젝트에서 참가하면 된다. 5,4,3,2,1 숫자를 거꾸로 세고 시작하면 되니까.



    시상 후 일주일 뒤 회식했던 어느 날이다. 회식자리에선 사람들이 나의 2위 소식에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지금 봐도 변한 게 없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나는 웃통을 벗는 시늉을 하면 얘기한다.


     “위통 까면 깜짝 놀람미데이~~~”

    (뱃살 보고 깜짝 놀랍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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