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추억은 결국 기억의 흔적이다.
추억이란 기나긴 시간의 기억으로, 항상 좇을 수밖에 없는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억의 감각에 우연히 닿으면 언제 잊었냐는 듯 어느새 그 시간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추억하게 됩니다.
_플랜투비《1℃ 인문학》(다산북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차가 없었다. 자가용이 없다는 건 여행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당시 집은 부유하지 않았다는 표현보다는 가난했다는 단어가 더 어울렸고, 그렇게 방 한 칸에서 네 식구가 보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두 형제는 별다른 대화 없이 유년기를 보냈다. 방이 한 칸에서 두 칸으로 늘어날 때 즘 초등학교를 갔고, 두 아이가 대학까지 간걸 보면 줄곧 부유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우리 집에는 자동차가 없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추억이 적었다. 과거를 억지로 쥐어짜듯 떠올려도 딱히 없다. 본가 장롱 속 낡은 앨범을 뒤져보면 아버지 계모임에서 간 해금강 유람선 사진이 빛바랠 뿐이다. 동네 뒷산 언덕에서 아버지 품에 안긴 형제들 사진도 있다. 그 조차도 나의 기억 속에 없으니 너무 어려서의 여행은 당신에겐 사치일 뿐이었는지 모른다. 어쩜 필름을 사고, 사진을 찍고, 인화를 해야 하는 과정도 추억에 대한 경제적 비용이 발생하니 그 마저도 용납할 수 없었던 걸까? 오늘날에 폰으로 수십 장을 찍어대는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초등학생의 아빠가 되었다. 그 사이 나의 아버지는 사진 속으로 들어가셨고, 1년에 한번 쯤 기일에 맞춰 얼굴을 보여주신다. 꿈에서.
지금 우리 집에는 차가 2대다. 오랜 된 경차는 출근 전용이고, 오랜 된 승합차는 주말여행용이다. 자가용이 있다는 건 여행에 대한 추억이 많이 가질 수 있는 확률이 높을 뿐, 자동차가 곧 여행이라는 의미를 뜻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주말만 되면 나는 자동차에 어린 녀석들을 태우고 어디든 나간다. 사는 곳이 부산이라 주로 부산, 경남 지역으로 간다. 지금의 시간들을 분명 기억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녀석들의 어린 시절 ‘아빠는 부지런히도 우릴 데리고 다니셨구나.’라는 기억을 할 것이다. 추억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우리 집에는 추억이 많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된 두 녀석들을 1살 때부터 별일 없는 한 매주 주말 집밖으로 나갔다. 가까운 도서관에도 가고, 공원에도 갔다. 부산의 웬만한 곳은 다가봤고, 경상남도도 함양과 거창 빼고는 다 가봤다. 경북, 전남, 전북에도 당일치기로 간간히 간다. 2년에 한 번씩 강원도도 가고 있고, 제주도도 서너 번 갔다. 그 작은 아이들 데리고 해외여행도 3~4번 갔다. 그렇게 주말이면, 여름이면, 계절의 변화속에서 부지런히 데리고 다녔다. 기억 못할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말이다.
추억이 인화되어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라면, 기억은 잘려져 나온 디지털 사진이다.
모든 기억이 익어 추억이 되진 못하지만, 모든 추억은 결국 기억의 흔적이다.
_김이나《보통의 언어들》(위즈덤하우스)
지금 우리 집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많다. 방문 빽빽이 붙여져 있다. 아이들과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서다. 추억이 인화되어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라면, 기억은 잘려져 나온 디지털 사진이기 때문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저마다의 기억은 다를 것이다. 녀석들의 기억은 소멸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모든 기억이 익어서 추억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폴라로이드 속의 모든 추억은 결국 기억의 흔적이 된다.
과거가 될 만반의 자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러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뒤 사진기를 보고 웃었다.
_김애란《바깥은 여름》(문학동네)
“자, 애들아,
여기 좋네,
여기서 사진찍자!
자 이쪽으로 보고~
좀, 웃어라!
하~나~, 두~~울~~, 셋!”
찰칵!
그렇게
과거가 될 만반의 자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러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뒤 사진기를 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