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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Apr 20. 2023

‘과정’이라는 선물

남자가 꽃집에 가서 어색해하는 순간까지 다 포함된 선물

    화훼단지에 주차를 한지 5분이 지났다. 쉽게 차문을 열고 나오지 못한다. 어떤 걸 골라야할지 폰으로 검색하고 있지만 어색하다. 빨간 장미의 꽃말이 사랑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어색함을 애써 감추려고 한 손으로 스마트 폰을 만지며 쓸데없이 114를 누른다. 흘러나오는 자동음성에 마치 통화하기라도 하듯이 걸어간다. ○○○플라워, ○○난원, ○○꽃집, ○○이네 꽃 등 수십 개의 간판이 천장에 대롱대롱 걸려 있다. 이런, 꽃말은 검색했지만 화훼단지 내 꽃집 상호는 검색을 안했던 것이다. 난생 처음 온 것이지만 자주 온 마냥 간판을 찾는 시늉을 해본다. 대충 5번째 꽃집을 지나서야 마치 이집이 맞는 마냥으로 이모에게 말을 건네 본다.


“이모~ 꽃다발 얼마지예?”

“삼촌예~ 어디 사용할라꼬?”

“아, 결혼 10주년이라서예.... 그냥 빨간 장미로 10송이 해서 알아서 해주이소”

“이래저래 서까주까(어줄까)?”

“네, 알아서 하면 됩니더”

“포장은 비니루(비닐)로 할끼가? 종이할끼가?”

“몰라예 알아서 해주이소”


    몇 마디 주고 받은 뒤 대화가 더 이상 이어질 일 없다는 생각에 다시 폰을 만지작거린다. 능숙한 손길의 이모는 빨간 장미 열 송이를 집어 든다. 가위는 아닌 듯 해 보이는 절단도구로 줄기를 적당히 자고 빨간색과 잘 어울리는 작은 꽃들을 한 움큼 지어든다. 이래저래 꺾고 자르고 뜯고 만지더니 옆에 보기 좋게 올려놓는다. 베이지색 종이를 길게 펼치고 그 위에 정리한 꽃들을 올리더니 돌돌 말아서 쓱싹 쓱쓱 하더니 꽃다발이 완성된다. 옆에 있던 아들로 보이는 총각이 카드단말기를 들고 내 앞으로 온다.


“30,000원인데 어무이가 10%깎아주라케서 27,000원 계산하시면 됩니더.”

“아~ 진짜예? 고맙습니데~”


    계산 후 한 송에 꽃다발을 들고 마치 차안대를 찬 경주마처럼 오직 앞만 보고 그렇게 빠져나와 차에 앉았다. 무슨 큰일이라도 치른 마냥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깜짝 꽃다발 선물에 기뻐할 아내를 떠올리니 미소가 나오다가도, 또 이 꽃다발을 식당까지 들고 갈 생각을 하니 부끄러움에 걱정이 되었다. 차량 뒷좌석에 보니 둘째 녀석 카시트 앞에 마침 쇼핑백이 하나 있었다. 쇼핑백에 꽃다발을 넣으면 덜 부끄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로고 깊은 쇼핑백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 그렇게 크지가 않았다. 그래도 조심스레 담아놓고 나서야 폰으로 사진을 찍을 여유가 생겼다.


< 사진출처 : 글로성장연구소 https://cafe.naver.com/guelstar/6872 >


‘과정’이라는 선물
꽃을 선물 받는 건 남자가 꽃집에 가서 어색해하는 순간까지 다 포함된 선물이래요. 남자가 얼마나 큰 어색함을 무릅쓰고 꽃집에 갔을 거며 꽃을 사기까지 얼마나 민망했을 거예요. 그래서 꽃 선물은 꽃집으로 갈 때까지 여자를 생각하는 그 마음들이 담겨 있는 선물이래요. 그래서 여자들이 꽃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_오하림《나를 움직인 문장들》(자그마치북스)



    내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 다발의 꽃을 구매했으리라고 생각도 못할 아내다. 물건 살 때 흥정도 잘하고 넉살도 좋은 편인 나인데 꽃다발만큼은 이리 어색했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허탈함에 웃음이 절로난다.


‘아따 디(힘들어) 죽겄네~’

‘아내가 알려나?’

'그래도 좋아하겠지ㅋㅋㅋ'


과정이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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