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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song 꽃song Apr 05. 2024

숲에 기대어 사는 즐거움

 어느 날 숲에 기대어 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숲에 기대어 살기 시작했다. 지금도 가끔은, 이전에 아무런 연고도 기억도 없던 이곳 숲 속에서의 생활이 꿈만 같다. 삶은 이렇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40대 후반은 삶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를 둘러싼 도시 환경이 끊임없는 욕망을 자극하고,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늘 무언가에 쫓기듯 분주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 생각은 꾸준히 참여해 온 독서모임에서 더욱 크게 힘을 얻었다. 책과의 대화, 친구들과의 담론 속에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본 질문들.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가?', '진정한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이러한 성찰 끝에 도달한 결론은 명확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좀 더 본질적인 것들에 충실하게 사는 것,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사는 것,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 내면의 평화와 평정심을 유지하며 사는 것, 좋아하는 것들에 깊이 몰입하며 나답게 사는 것이었다.   

                

  더 이상 이대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좀 더 단순하고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도시와의 완전한 단절은 망설여졌다.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소중한 인간관계가 남아 있는 도시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겁이 났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되, 필요할 때는 도시의 문화를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거리가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 5년 동안, 주말마다 쉴 틈 없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찾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장소들이 한 가지가 마음에 들면 다른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려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전원주택이나 땅을 구하는 일은 도시의 아파트를 찾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마음에 든 집이 하나 있었다. 자주 그곳에 들러 차를 마시며, 이미 내 집이 다 된 것처럼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그 집을 계약하러 간 날,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중한 것을 잃은 것처럼 마음의 고통이 컸다. 비슷한 일들이 몇 차례 반복이 되자, 점점 지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연이 될 집이나 땅은 단순한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인연이 될 집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오랜만에 남편이 부동산 정보사이트에 들어가 보더니, 우리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거리의 지역에 집이 한 채 나왔다고 했다. 그 정도의 먼 거리는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남편은 혼자 그곳에 다녀오더니, 집 앞으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호수뷰가 아주 멋진 집이라고 했다. 그 후로도 내 반응을 살피며 혼잣말하듯 몇 번을 더 말했다. 지리산 마니아였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말할 때마다 무심히 흘려 들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살짝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평소 말이 적은 남편이 그렇게 여러 번 말하나 싶었다. 바람 쐴 겸 보고나 오자고 했다.    

                 

 직접 가서 보니, 과연 집 앞쪽으로 멀리 천왕봉이 보이고, 가까운 곳에 아담한 호수가 보였다. 남편은 눈앞의 풍경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만으로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 내 삶이 그곳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상상이 필요했다.

 

 집 뒤에는 숲이 있고, 개울이 흘렀다. 무작정 숲 속으로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우거진 으름과 다래 덩굴이 서로 얽혀 있었다. 마치 제주도 곶자왈 같았다. 그 숲에 한참을 서 있자 원시적인 채취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봄이면 연한 다래순을 따서 실컷 나물을 무쳐먹고 가을이면 이 바위 저 바위 폴짝거리며 마음껏 으름과 다래를 따먹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살짝 흥미가 생기자 개울 건너 오른쪽 숲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높이 뻗은 낙엽송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너럭바위는 홀로 앉아 명상하기에 맞춤하였다. 숲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가끔씩 혼자 있고 싶을 때면 아무도 모르게 살며시 숨기에도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주변의 두 숲은 내게 서로 다른 이야기와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게 하였다.  

 그날 이후 주말마다 그곳에서 하루종일 머물거나 밤을 지나 보았다. 숲에서의 삶을 충분히 상상해 보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사이, 우리는 서서히 숲에 스며들었다. 


 좋아하는 것에 깊이 몰입하며 나답게 살기 위해 찾은 숲 속의 삶, 어느덧 올해로 10년째다. 




 숲 song 꽃 song 브런치에서는 앞으로 숲에 기대어 사는 즐거움(자연 속 일상), 정원으로 출근합니다(꽃 가꾸는 이야기), 그림책 읽다가 잠이 듭니다(내 마음의 그림책 이야기)로 나누어 이야기해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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