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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숲 속 어딘가를 걷고 있을 너의 이야기

내 곁에 머물다 간 숲 속 고양이들 1 (귀촌을 함께 시작한 호롱이)

by 숲song 꽃song
숲 가까이에 둥지를 튼 지 10년.

아직도 그곳에 사냐고 묻거나, 언제 다시 도시로 나올 거냐고 묻는 지인들의 궁금증과 무관하게 나는 이곳에 잘 뿌리내리며 살고 있다.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인연이 그러하듯, 숲에 사는 동안 고양이들과의 인연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또다시 시작되면서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귀촌의 시작부터 내 곁에는 언제나 고양이가 있었다.




호롱이는 귀촌 전, 아파트에서 키우던 고양이다.

딸이 고3 시절 힘들어하던 모습을 보고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늘 원해왔던 고양이를 집에 들였다. 벵갈 고양이로, 얼굴의 균형미가 단번에 눈을 끌었다. 딸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호롱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그 사이 우리 부부는 호롱이에게 푹 빠져들었다. 자연스럽게 귀촌할 때 호롱이는 우리와 함께였다.


처음엔 아파트에서처럼 집 안에 두었지만, 뛰어놀기 좋은 바깥을 두고 집안에만 갇혀 있는 게 안쓰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호롱이도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는 듯하여, 결국 자유롭게 내보내기로 했다. 불안하긴 했지만, "얼마를 살더라도 자유롭게 사는 게 더 행복할지 모른다"는 마음이었다. 낮에는 데크 위와 마당을 마음껏 누비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돌아와 집안에서 우리와 함께 잠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롱이는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 나랑 마당에서 함께 놀았었다. 부르면 언제나 어디 선가 달려오던 녀석이었는데, 그날은 한참을 불러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려면 꼭 여러 일들이 함께 꼬인다. 그날따라 견딜 수 없이 피로가 밀려왔다. 몇 번을 불러도 답이 없자 ‘곧 돌아오겠지’ 하면서, 거실에 앉아있던 남편과 늘 저녁이면 돌아오던 호롱이를 믿고 일찍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아침이었고, 깜짝 놀라 호롱이부터 확인했다. 남편에게 물으니 자기도 유튜브를 보다 호롱이가 밖에서 소리를 냈는지, 들어오지 않았는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고 했다. 놀란 마음에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 호롱이를 찾기 시작했다. 동네와 숲 속, 심지어 옆 골짜기 마을까지 이름을 부르며 종일 돌아다녔지만, 호롱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 매일같이 부르며 찾아다녔다.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산골이긴 해도 그동안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야생 짐승을 마주치거나, 피해를 본 적은 없었다. 호롱이도 기껏해야 마당이거나 아랫집 정도 어슬렁거리다 돌아오곤 하지 않았던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에 하나라도 짐승에게 잡혔다면 어딘가에 흔적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하며 온 동네와 숲 속을 미친 듯이 쏘아 다녔다. 뼈라도 남았으면 꼭 찾아 묻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추측해 볼 만한 단서도, 아무런 흔적도 하나 없이, 호롱이는 그날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날 숲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끝없는 자책과 후회가 이어졌다.


"그날 일찍 잠이 들지 않았더라면…."


"그 밤 남편이 유튜브에 빠져 있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집 안에서만 키웠더라면…."

길을 걷다 호롱이와 비슷한 무늬의 고양이를 만나면 반사적으로 "호롱아!" 하고 불러보던 날들이 꽤 오래 이어졌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마음이 정리되면서 호롱이를 놓아줄 수 있었다. 호롱이가 사라진 것을 굳이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 좁은 집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낮에는 마당과 숲 주변을 누비고, 저녁에는 따뜻한 집안에서 쉬면서 충분히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숲 어딘가에서 더 큰 자유를 누리며 여전히 자기 생명을 노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으로 호롱이를 놓아주고 나자, 호롱이는 비로소 '살아있는 이름'으로 숲 속 어딘가를 유유자적 거닐기 시작했다.


마음먹기에 따라 삶이 고통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살아 숨 쉴 수도 있다는 것을 호롱이를 통해 경험했다. 이후로 이어지는 숲 속 고양이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훨씬 편안해지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모두 나의 첫 고양이, 호롱이 덕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롱이는 귀촌생활의 첫 스승이기도 하다.


보고 싶은 마음 가득 담아, 오랜만에 불러본다.

"호롱아! ~ , 오늘은 어느 숲 속을 거닐고 있니? "


숲 속 고양이들을 추억하기 위해 꽃밭에 세워 둔 고양이 테라코타


귀촌생활을 함께 시작한 호롱이가 사라지고 난 뒤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다. 그러나 숲은 그 사이 새로운 인연을 품고 있었나 보다.





<덧붙임>

호롱이는 귀촌생활을 함께 시작한 나의 첫 고양이예요. '고요한 숲 속집에 생기발랄이 찾아왔다 2화'에 잠깐 이름이 나왔었지요. 순서가 뒤 바뀌었지만 본래 '내 곁에 머물다 간 숲 속 고양이들' 첫 번째로 등장해야 할 이야기랍니다.


(고요한 숲 속집에 생기발랄이 찾아왔다 1화)https://brunch.co.kr/@bom0415/46

(고요한 숲 속집에 생기발랄이 찾아왔다 2화)https://brunch.co.kr/@bom041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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