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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song 꽃song Oct 18. 2024

그래, 이 맛에 숲에서 살지!

야생의 부름

 어멋! 가을이 왔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정신바짝 차리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해!


 제 때를 맞추어야만 제 맛을 볼 수 있는 산중 과일,

다래가 익어 떨어지고 으름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자세렸다.


  

 요 며칠, 눈만 뜨면 숲으로 내달린다. 다람쥐처럼, 새처럼, 이 바위 저 바위 오르락내리락하며 으름 따먹는 재미에 빠져 있다. 하루에 적어도 2~30개는 따먹는 것 같다. '혹시 한꺼번에 너무 먹어 배탈이 나거나 건강상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어 으름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항산화 작용, 면역력 강화, 혈액순환 개선, 소화개선, 항염효과, 콜레스테롤 조절, 혈당조절, 간건강, 체중관리, 항균효과, 심장건강, 피부건강개선등 주요 효능이 12가지나 있는 자연식품이라고 다. '나에게 딱이구나'싶어 '얼씨구 좋다'하고 더욱 신나게 따먹다.




 다래와 으름은 숲 근처로 귀촌하여 처음 어 본 후, 좋아하 된  열매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산골이었지만 말로만 들어봤지,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다. 깊은 산속이라 아무 데나 있는 것은 아닌가 보았다. 어렸을 적, 우연히 동네어른들이 하는 말속에서 다래가 산열매 중에서도 가장 달고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 적이 있었다. '처음 들어 본 다래라는 열매는 어떻게 생겼을까? 달고 맛있다는데, 사탕맛일까? 아이스께끼맛일까?' 도대체 상상이 안되어 늘 궁금한 채로 기억 속에 묻혀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사진으로 다래와 으름열매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하여 남편과 등산 다니면서  서너 번 직접  적 있었는데, 볼 때마다 너무 높이 매달려있어 제나 그림의 떡이었다. 으름과 다래가 있는 곳은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는 곳, 원시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곳, 인간이 떠나 온 머나먼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귀촌할 결심을 한 것도 뒤로 이어지는 숲이 온 으름과 다래덩굴로 뒤덮은 곳이었다는 점이 한 몫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바람이나 쐴 겸, 매매로 나온 집을 보러 온 길이었다. 숲이 있길래, 무심코 들어섰다가, 내 안의 야생성과 원시적 채취의 본능이 강렬하게 꿈틀대는 걸 느꼈다. 야생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운 상상이 펼쳐지면서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이런 곳이라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살게 된 숲 속집에서 맞이한 첫가을,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다 다. '지금쯤이면 다래가 익었을까 '하고 숲에 들어갔다가 바위 위에 떨어져 있는 다래를 하나 주워 먹어보았다. 말랑거리는 열매를 쪽 빨아먹었는데 어찌나 달콤하고 맛있던지, '옛날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이거였구나' 싶었다. 부터 다래가 익어갈 때 되면 행여 때를 놓칠세라 수시로 숲을  들락거리며 다. 다래는 으름보다 조금 더 일찍 익는데, 익으면 바람에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제때를 맞춰 맛을 보기란 쉽지가 않다. 게다가 키 큰 나무들을 타고 높이 뻗어 올라가지라 주렁주렁 매달린 다래 고도  안타깝게 침만 흘리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조금 낮게 매달린 곳이 눈에 띄남편과 둘이 호흡을 잘 맞춰, 남편이 긴 낫으로 덩굴을 잡아당겨주면 내가 잽싸게  래를  따다. 그렇게라도 다래를 따먹을 수 있는 날엔 신선한 다래맛을 본 대가로 목이 꺾인 듯 아파오는 걸 감수해야 한다. 한껏 목을 쳐들고 순간에 엄청 집중하기 때문이다. 어 해 감질나게 다래를 따먹다가, 아주 게 다래 맛을 볼 수 있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바로 잘 익은 다래가 떨어질 때,  때를 맞추어 주워 먹는 것다. 가을엔 꼭 한두 개의 태풍이 지나가곤 하는데, 때가 맞으면 아주 손쉽게 맛있는 다래를 듬뿍 주워 먹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수시로 숲에 들어가 다래 덩굴아래,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다래를  찾아 주워 먹는다. 손으로 눌러봤을 때 말랑말랑한 다래는 입에 대고 쪽 빨면  상큼하고 달콤한 과육이 입안을 살살 녹인다. 덜 익었지만 비바람에 떨어진 다래들도 주워 놓았다가 며칠 뒤 숙성되어 말랑거릴 때마다 하나씩 골라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모든 일이 짧은 시기에 훌쩍 지나가기 때문에 깜박하면 때를 놓치게 된다. 올가을엔 외출할 일이 많아 잊고 지내다가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다래맛을 보려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얼마나 억울하고 아쉬웠는지 모른다. 요즘은 다래농장에서 출하되는 재배 다래도 사 먹을 수도 있고, 정원에 다래나무를 심어 손쉽게 따먹기도 한다. 하지만 야생 다래를 새처럼 때를 기다렸다가 따먹거나 주워 먹는 즐거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래는 놓쳤지만 으름만은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수시로 숲을 들락거리며 으름이 벌어지기를 기다렸는데, 요 며칠 막 벌어지기 시작. 올해는 고맙게도 따먹기 딱 좋은 위치에 있는 것들이 꽤나 많다. 쩍 벌어진 으름들 중에는 발 빠른 새들이 1차 먹고 갔는지 빈껍질만 남아있는 것들 눈에 다. 뽀얀 속살을 살짝 파먹다 만 것들은 성질 급한 새가 한 입 먹어보고 아직 맛이 들지 않아 '퉤퉤' 하고 그대로 둔 것들이다. 새들은 어느 게 달콤한지 귀신같이 잘 안다. 나도 몇 년 동안 새들과 '네가 먼저 먹냐, 내가 먼저 먹냐' 하고 부지런히 숲을 들락거리다 보니, 지금은 어느 게 달콤한지 금세 알아볼 수 있다. 껍질이 완전히 쫘악 벌어지고, 뽀얗고 도톰하던 속살이 엷고 투명해져 속 안의 씨앗이 거뭇거뭇 보일 듯 말 듯한 상태가 되었을 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그런데 이토록 맛있는 으름을 먹는 일은 꽤나 고약하다. 껍질 안 말랑해진 과육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과육을 빨아먹음과 동시에 씨를 발라가며 뱉어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 따르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한참 먹다 보면 양 턱이 뻑뻑해지면서 힘이 들어간다. 성질이 급하거나, 입안에서 과육과 씨를 오물거리면서 발라내는 일이 귀찮은 사람은 안 먹고 말 것이다. 아이들 같은 경우엔 껍질 안에 들어있는 긴 타원형의 과육의 형태가 꼭 애벌레 같다고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만이 불편을 감수하고 름맛을 즐긴다.




 한 마리 새처럼, 다람쥐처럼, 고라니처럼, 마음껏 숲 속을 쏘다니며 야생의 생명력을 만끽한 요 며칠이, 최근에 가장 신나고 설렌 이다. 숲에 들어가 으름삼매에 빠져있는 동안은, 산중에 오직 나 혼자 있는 듯, 완전한 고요와 평화를 누리는 시간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그래, 이 맛에 숲에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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