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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름은 무엇인가요?

정말 모든 게 주름 때문일까?

by 숲song 꽃song

혹시 그런 적 있으세요?

OO 때문에 전전긍긍하거나 모두가 나의 OO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주눅 들어 본 적이요.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OO을 바라보는 것만 같고 흉보는 것만 같은 기억말이에요. 저는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답니다. 아빠를 닮아 알이 꽉 찬 종아리, 속칭 무다리 때문이었지요.


아마도 고등학교 때부터였을 거예요. 우스개 소리를 잘하는 반 친구가 교복치마아래로 드러난 내 다리를 보더니

'니 다리 정말 통통하다. 맛있게 생긴 무 같네! 무다리!'

하며 크게 웃은 적이 있었지요. 물론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주변에 있던 친구들도 별생각 없이 따라 웃으며 재밌어했고요. 그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따라 웃다가 얼굴이 굳어진 사람은 나뿐이었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짓느라 애쓰면서요.


그날 이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치마아래 드러나 보이는 다리가 항상 신경이 쓰였답니다. 누가 내 다리보고 뭐라 할까 봐 전전긍긍하기 시작했고요. 지금은 여학생 교복하의를 치마와 바지 중 본인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 입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엔 여학생들은 무조건 치마를 입던 때였지요. 어쩔 수 없이 교복치마를 입어야 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내 인생에 더 이상 치마는 없다는 듯이 줄곧 긴바지만 입고 다녔었지요.


젊은 날, 나라고 하늘하늘 원피스 차림으로 데이트도 하고 한껏 멋도 부리고 싶지 않았겠어요? 치마를 입고 외출한 날, 드러난 다리에 신경 쓰느라 소모될 에너지를 생각하다 보면 피로가 먼저 몰려오면서 입고 싶다는 마음이 싹 달아나버리던걸요. 그 후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단정한 정장차림의 옷을 갖춰 입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최대한 긴치마를 챙겨 입는 걸로 다리에 신경을 덜 쓰려고 애썼지요. 무다리를 물려준 아빠는 애꿎게도 당연히 원망의 대상이었고요.


후훗,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지난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제가 왜 이런 말을 꺼냈냐고요?


최근에 서영 작가의 그림책 '주름 때문이야'를 읽었거든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멋진 그림책을 보고 나서 '나의 주름'은 무엇일까?'하고 자연스럽게 묻게 되더라고요.




당신도 이 그림책을 읽어보면서 '당신의 주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멋진 씨는 산책을 좋아해요. 매일 아침 늘 다니는 길로 경쾌하게 걷다가 반가운 얼굴을 마주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느 날 멋진 씨가 단골가게에서 누군가 두고 간 신문을 읽는데 글씨가 흔들흔들 어른거리는 거예요. 큰 일이다 싶어 안경점에 들러 새로 맞춘 안경을 끼고 거울을 보다가 얼굴에 온통 주름이 자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안경점을 막 나서는데 토끼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칩니다."멋진 씨! 세상에나 얼굴에…."

멋진 씨는 얼굴에 주름이 많다고 말하는가 싶어 황급히 얼굴을 가리고 도망갑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들러 주름 없애는 방법에 관한 책을 몽땅 빌려 샅샅이 찾아 읽고 책에서 알려준 대로 흉내 내어봅니다.


다음날 아침 거울 앞에 선 멋진 씨. 잠을 설친 탓인지 어제보다 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은 모습에 실망합니다. 이웃이 인사를 건네면 이젠 대답대신 기침 소리만 냅니다. 자신 있게 인사를 못하는 것도 다 주름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단골식당에 가서도 멋진 씨는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이웃이 인사하며 "멋진 씨 안녕하세요? 어, 그런데 입가에…."라고만 해도 도망쳐 나옵니다. 입가에 주름이 많다는 얘기를 꺼낼까 봐서요.




주름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은 멋진 씨에게 주름을 가릴 수 있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바로 입가에 수염을 사서 붙이고 주름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는 겁니다.

이젠 산책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시간에 나섭니다. 조금 쓸쓸하지만요.

바람이 부니, 두툼한 수염 때문에 콧구멍은 간질거립니다.



오믈렛을 먹을 때는 밥보다 털이 입속으로 더 많이 들어가고요.

모자 속은 후끈, 코밑으론 땀이 흐르기 시작했지요.


꼴이 아주 엉망입니다.



땀을 식히기 위해 아이스크림가게에 들어간 멋진 씨! 얼음알갱이를 잔뜩 추가하여 한입 베어봅니다. 수북한 콧수염이 아이스크림을 대신 먹어버릴 것 같아요. 멋진 씨는 콧수염을 내려놓고 입을 최대한 벌려 아이스크림을 한 입 왕! 베어뭅니다.


그때 이웃이 다가옵니다.

"안녕하세요? 멋진 씨! 실례일 수도 있지만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어…… 주름이 엄청 많은…."

멋진 씨는 주름얘기에 서둘러 자리를 피하며 속상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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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씨는 그때서야 이웃들이 하려던 말이 주름 얘기가 아닌 것을 알아차리고 주름 때문에 잊고 있던 자기가 좋아한 본래의 자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수염 떼어버리고 모자 벗어던지고 이젠 아무 걱정 없어요. 땀이 맺히면 쓱 닦으면 되고 주름이 잘 보여도 재미있는 것들도 잘 보여서 좋기만 해요. 멋진 씨는 산책길이 더 좋아졌어요.




즐겁게 산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온 멋진 씨는 달콤한 낮잠에 빠집니다

주름고민 없이요!







음~ 말씀드릴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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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젠 치마를 즐겨 입는답니다. 그것도 하늘 하늘한 원피스를요.


다리고민 없이요!


누가 내 다리를 쳐다보면 어때요.


나이 들어가며 다리통에 근육이 빠지고 가느다란 발목으로 불안해 보이는 다리보다 아직도 두툼한 발목에 단단하게 알이 배어있어 끄떡없이 땅을 딛고 있는 내 다리가 더욱 든든한 걸요.


그동안 지리산 종주며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섬진강, 한강, 금강, 만경강 거뜬하게 따라 걸은 내 다리가 자랑스러운걸요!



이젠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당신의 주름은 무엇인가요?










<덧붙이는 글>

제 글 속, 그림책 소개하는 글에는 그림책 전문의 글과 그림이 다 담겨 있지 않았어요. 스토리도 그림책 내용을 바탕으로 제 식으로 엮었고요.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그림을 직접 보면서 읽으시면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주름 때문이야〕/ 글과 그림 서영/다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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