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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조금 더 다정해질래요!

다정하다는 건 뭘까?

by 숲song 꽃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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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이혜인 작가의 새로 나온 그림책 '오늘 더 다정해져요'를 만난 후, '다정함'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쏘옥 들어왔다. 한참이 지났건만 문득문득 떠오르며 몽글몽글 따뜻한 온기로 마음을 덥혀주더니 마침내 둥지를 틀었나 보다. 새해 들어 새로운 마음가짐과 채비를 하는 동안에도 다른 어떤 새로운 각오나 계획을 앞지르며 '다정해져요'라는 말이 먼저 달려 나왔다.


'옳지!, 그러면 다른 무엇보다 새해엔 조금 더 다정해봐야지!'

조금 더 다정해진 한 해를 미리 그려보니, 한 해가 더없이 복된 모습으로 다가왔다.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이혜인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지었다고 했다.


유치원의 점심시간, 감기에 걸려 콧물을 훌쩍거리는 나를 보고 옆에 있던 친구가 말없이 휴지를 가져다준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OO 이는 참 다정하네'라고 말한다. 나는 '다정하다는 건 뭘까?' 생각해 보며 궁금한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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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다는 건 대단한 건 아닐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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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용기가 조금 필요할지도 모르죠. 속상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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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다는 건 내가 가진 걸 나누거나 누구도 혼자두지 않는 건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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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다는 건 잠시 멈춰 서서 기다려 주는 걸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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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다는 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이름을 물어주는 거예요.




소복소복 다정함이 쌓여가요


그렇게 더 다정해져요


그렇게 더 따뜻해져요


이제 다정하다는 게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오늘은 어제보다 더 다정해질 거예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다정해질 거예요






그림책에는 아이의 시선으로 다정함을 이해하고 체화해 가는 여정이 따뜻하고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그림책 속의 다정함은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게 일상의 곳곳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부드럽고 포근하게 이어준다. 그림책 첫머리에서 던져지는 '다정하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은 읽는 이도 함께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가며 내가 누군가에게 다정했던 순간을, 누군가가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었던 순간을 떠올려보게 한다. 그러다가 책 속의 아이처럼 다정하다는 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져 내가 오늘은 어제보다 더 다정해질 거라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다정해질 거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읽을수록 행복해지고 다정해지는 그림책이다.




다정하다는 건 뭘까?


네가 생각하는 다정하다는 말은 어떤 거니?


너는 어느 때 다정함을 느꼈니?


다정하다는 말이 내게 온 이후, 줄곧 물음표를 품고 지내다가 친구랑 둘레길을 걷다가 만난 적이 있는 노년부부가 생각났다.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가 오랜만에 산골 우리 집에 놀러 와 가까운 둘레길을 함께 걸은 날이었다. 딱 좋은 계절에 마음이 딱 맞는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숲길이니, 친구도 나도 한껏 부푼 마음이었다. 점심때가 가까울 무렵 걷기 시작했고 왕복 2시간은 넘는 길이었다. 주변에 음식점도 마땅치 않아서 걷다가 간단하게 점심요기나 하자고 샌드위치와 우유를 챙겨 나섰다.


한 시간쯤 걸었을 것이다. 숲둘레길로 이어지던 길에서 강변으로 빠져나오자 강가에 큰 너럭바위들이 나타났다.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강가의 평평한 바위에 앉아 다정하게 점심을 먹고 있었다. 때마침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던 차였다. 논두렁 새참 먹듯, 소풍을 나온 듯, 물가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던지 슬그머니 그 옆에 끼어 앉아 밥을 얻어먹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것도 부부가 단둘이 먹는 그 자리에 우리를 끼어주리라는 생각은 언감생심 하지 않았다. 그분들이 무안해하실까 봐 눈길도 안 돌리고 무심한 듯 지나치고 있었다.


여봐요! 여기 와서 밥 좀 먹고 가요!


순간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동시에 눈을 마주치며


'어머나, 정말 그래도 되나요?'


라고 말은 하면서 발걸음은 벌써 그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호의를 덥석 받아들이는 일이 멋쩍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조금 전 우리가 들은 다정한 말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그 드물고 귀한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두 분의 나이는 우리보다 조금 위인 듯 싶었다. 호탕하고 붙임성 좋은 아내는 밥이 반쯤 남은 찬합과 반찬통을 우리에게 밀어주며 어서 먹으라고 눈짓을 보냈다. 찬합의 밥은 두 분이서 숟가락질하며 남긴 고춧가루가 살짝 묻어있었다. 반찬은 거의 살을 다 발라먹은 듯한 갈치토막과 몇 가지 맛있게 무쳐진 나물반찬이 전부였다. 아마도 까탈스러운 입맛이거나 비위가 약한 사람이었다면 정중하게 거절하며 받아먹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시람에게 밥 먹고 가라고 불러주신 그분들의 다정한 말이 기쁘고 감사하기만 했던 우리는, 게눈 감추듯 맛있게 싹싹 긁어먹었다. 당신들의 호의를 잘 받아준 우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아내분은 후식으로 참외를 깎아내고 남편분은 커피를 정성스럽게 타주시면서 또다시 맛있게 먹는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그 다정한 눈길이 마음을 벅차게 했다.


두 분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으며, 종종 강가 근처에서 산나물도 채취하고 점심도 까먹으며 놀고 가신다고 하셨다. 쉽게 곁을 내주시며 동네사람인 듯 편하게 정담을 나눠주시는 바람에 한참을 앉아 먹고 놀았다. 마저 걷기 위해 일어나면서 아쉽고 감사한 마음에 준비해 왔던 샌드위치를 새참으로 드시라고 전해드렸다. 그러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또 직접 담은 오디효소를 생수에 넣고 흔들어 챙겨주시면서 갈증 날 때 마시라고 하셨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셨는지 새참으로 드시려고 남겨두신 듯한 삶은 계란을 주섬 주섬 또 꺼내더니 배고플 때 까먹으라고 손에 꼭 쥐어 주셨다.




그날 둘레길을 걷고 돌아오면서 낯선 이에게 선뜻 곁을 내어준 그분들의 다정함에 정에 부른 하루이자 아름다운 날이었다고 친구랑 나랑은 서로 질세라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가끔씩 그 길을 걸을 때면 혹시나 그분들이 어디선가 밥을 먹고 계시다가

'여봐요! 여기 와서 밥 좀 먹고 가요'

라고 부르실 것만 같아 주변을 한참씩 두리번거리곤 한다.


다정하다는 건 뭘까?


그건 아마도,
옆사람이 나에게 스며들도록 곁을 내어주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옆사람에게 기꺼이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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