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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May 25. 2024

아들! 이러다 엄마도 군대 가겠어~

밀리터리 시크릿 01

나의 첫 브런치 응모작이자 첫 작품은 군인이 되겠다는 딸을 말리고 싶은 엄마의 마음, 갈등 그리고 응원의 시간을 기록한 글이었다. 로부터 1년이 지났다. 나를 브런치에 입문시키고 글을 쓰게 만들고 내 직업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만들었던 외동딸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수호자가 되었다.


현직에서 모녀가 장교로 함께 근무하는 것은 군이 여성을 장교로 임관시킨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 부분이 큰 화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지만 독립운동 유공자의 손자가 교로 임관하거나 할아버지-아버지-아들까지 대를 이어 장교 되거나 해외시민권을 포기하고 임관하는 등등 크고 작은 이슈들이 많아서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주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누구의 아들, 딸이라는 프레임은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것 같다. 스스로 계획한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앗기고 부모의 그늘 속에서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성인이 되면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딸이 군인이 된 후 주변인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너는 진짜 성공했다.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면 군인이 된다고 했을까?" "졸업하고 바로 직장인이네 부럽다" "진짜 자유인이네 홀가분하겠다"이런 말을 들을 때 뭐라고 반응을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삶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변인들에 의해 아무 걱정할 것도 없고, 세상 부러울 것도 없는 편안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첫 직업을 군인으로 선택한 딸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고민걱정도 많다. 아는 게 병이라는 말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이렇게가슴에 깊숙이 와닿을 수가 없다.


나와 같은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딸을 바라보면,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나를 현재에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이를 악물고 참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갑자기 독주 한잔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26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아진 환경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한동안 "이건 어떻게 해야 돼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게 맞아요?" 이런 질문을 하던 딸은 적응이 되어가는지 점점 전화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 전화를 받고 통화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이자 동료이고, 전우가 된 딸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 고민을 했다. 매일 다른 일들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등 환경은 달라질 것이고, 해결할 과제가 많아지겠지만 단편적인 해결법을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을 심어주고 싶었다.  


"너는 군인이라는 것 자체로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니 너 자신을 믿고 항상 당당하게 행동하면 돼. 일은 배우면 되지만 마음은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니. 어떤 상황도 누구도 너를 해칠 수 없게 항상 너 자신을 지켜야 해.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잘 할 수 있어. 너를 믿어"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밀리터리 다이어리를 연재하기로 한다. 딸과 같이 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과 앞으로 군인이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여군인 엄마라서 줄 수 있는 지혜와 마음을 가득 담아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따라 남성에게만 국방의 의무가 주어진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병사 복무기간이 줄어들고 급여는 올라가는데 비해  급여와 복무기간이 차이가 별로 없는 초급장교 모집률이 아주 저조하다. 최근 대학가 앞에서 남학생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ROTC지원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병사로 가면 복무기간도 짧고 급여도 많이 올라서 오히려 매력이 있는데, 장교로 가면 복무기간은 길고, 책임은 무겁고, 생활의 자유도 누리지 못하다.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이유다.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모든 대학교에서 ROTC후보생 모집률은 저조했고, 일부에서는 정원의 30%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모집이 안 되었으니 일선 부대는 공석직위가 많이 생기고, 이미 모집된 초급 장교들이나 기존 장교들에게 업무가 가중될 것이 예상된다. 이것은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고, 장기복무 지원을 하지 않게 하는 식의 악순환을 만들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우수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역량을 펼치고 성장하려고 애쓰는 원동력을 잃어버리면 그 조직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국방력이 세계 10위권에 들어가 있지만 이대로 가서는 유지가 어렵다. 우리 뒤를 쫓아오는 젊은 국가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언제 순위를 빼앗길지 모른다. 국방은 과학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필요하다. (미국의 일 년 국방비가 세계 10위권 전체 국가의 국방비와 비슷하다. 군인의 숫자도 더 많다.)


이 사람이 꼭 남자일 필요는 없다. "왜!!! 남자만 군대에 가야 해? 남녀평등이라며 왜 여자는 군대 안 가?" 말이 지속적으로 불거져 나왔지만 아직도 법이 바뀌지는 않았다. 바뀌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조차 자신의 딸에게 의무복무를 시키겠다는 정책에 대해 손을 들어 찬성할지 의문이다. 군대를 아주 위험하고 무서운 곳으로 생각하는 엄마들도 절대 반대일 것 같다. 그래서 여성의 의무복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아직은 사회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습니다. 시기상조입니다." 이런 말로 마무리가 된다.


어쨌든 유독 국방의 의무만 여성에게 예외가 되었지만 군에서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고 정원이 증가하고 고급직위의 비율도 증가하는 것을 보면 여성인력의 정원을 과감히 확대하고 그들이 제대로 복무할 수 있게 모성보호정책을 현실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국방의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에 스스로 군인의 길을 선택하고 고된 훈련을 잘 이겨내고 성실하게 군 간부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은 너무나 대견하고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다. 이 여성들이 개인의 행복과 공익의 시이소오에서 균형을 잘 잡고 여성리더, 조직관리전문가, 군사전문가로 거듭나고 멋지게 후회없이 군인의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들 중 한 명이 국방부 장관이 될 것이다.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엄마가 아이를 보면서 말했다.

"아들~ 이제 아이도 안 태어나고, 군대 갈 남자도 부족하데~~ 이러다 엄마도 군대 가야겠어~~"

이런 현실 인식을 하고 계신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나라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지키는 것이다... 한쪽에만 의무를 강요할 수는 없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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