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9)
19년 전 이곳에 처음 이사왔을 때는 꽤 낯설었다. 친구 하나 없고,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오르막에 또 오르막을 올라야 집이 보이는데, 노트북과 책을 넣은 가방을 메고, 가끔은 기타까지 챙겨 학교를 다녔다. 운동은 되지만, 몸이 피곤한 날이면 마지막 경사 코스가 주는 가쁜 호흡이 달갑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 날은 울그락불그락 하는 다리 반응에 집중하며 언덕을 올랐다. 이제는 일부러라도 그 느낌을 느껴야 한다.
도시이지만, 고요하고 적막함을 풍기는 언덕 위 보금자리다. 주차하고 내리면, 고요함을 품은 산뜻한 공기가 새 힘을 주겠노라며 나를 반기는 듯하다. 이젠 제2의 고향같다. 결혼 전에 몇 년 거주했다는 이유로 그런 마음을 가진 건 아니다. 무엇일까? 생각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 계기가.. 잠시 머무는 동안 그것을 깨닫지 않을까 한다. 이미 하나의 답은 얻은 듯하다.
아이들이 북적대고, 네 식구가 움직이는 소리에 아버지는 “사람 사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참 좋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효자시다. 이틀에 하루, 할머니 댁에서 주무신지 7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특별한 시간을 보내며 할머니의 후반전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 가족이 아버지 댁으로 들어오는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막상, 한 울타리에 거하니, 특히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이전에는 알아 차리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서 읽어진다. 그때는 이런 이유, 저런 이유가 시야를 막고, 가슴을 옹졸하게 했다. 그것이 사랑을 방해하고, 마음을 깊이 나누는 것을 두렵게 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확신하면서도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이미 이유들은 사라졌다. 실제로 한 공간에 있으니 기회가 왔고, 자연스럽다.
이제 손자들을 내세워 사랑의 언어를 마구마구 쏘아 댄다.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공기가 집안을 메운다. 아버지가 할머니 댁에서 주무신 어제는 두 아들이 할아버지 침대를 차지했다. 아침에 들어오셔서 손자의 자는 모습을 아주 흡족하게 바라보셨다. 오후에는 집근처 카페를 들렀다. 당분간 카페는 읽고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