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리더의 성공

노조 선거가 시작되었다

노조 선거가 시작되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이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된다. 소설의 첫 문장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이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여운으로 남는다. 사람의 삶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여서 초심의 여운이 마지막까지 이어질 때 아름답다. 아마도 픽션인 소설의 이야기와 다큐멘터리인 삶의 이야기에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의 첫 문장은 마지막에 고쳐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공약으로 선택을 받는데 대체적으로 과거를 비판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내용이다. 과거에 대한 비판의 근거는 무능이나 잘못일 수도 있고, 단지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회사의 직원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하지 않은가? 아니면 모두가 비슷하게 행복한가?


공약이 원대할수록 이른바 리더가 겪게 되는 왕관의 무게 또한 무거워진다. 왕관의 무게란 공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어려운 상황들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겪게 되는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로 회피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을 견디는 것이 바로 왕관의 무게다. 공약에 실패했더라도 왕관의 무게를 견딘다면 비판 속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날 수 있으며 선배로 남게 된다.


많은 리더들이 왕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하는 리더는 제각각의 이유로 자기 합리화를 하지만,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는 리더는 모두 초심을 마지막까지 이어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초심을 지키며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신독(愼獨)이고 다른 하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


신독(愼獨)은 스스로 초심을 견지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해득실에 밝으면 성공한다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적어도 출사표를 던지는 자는 올바른 초심을 가져야 한다. 처음부터 권력을 탐하면서 출사를 하는 것은 이미 리더로서 실패다. 통상 초심에는 Why와 How와 What가 혼재되어 있는데, 사실 Why만이 견지해야 할 초심이라고 할 수 있다. How나 What은 수단과 방법이므로 상황에 따라 유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약속한 How나 What에 매몰되면 겉보기에는 초심을 견지하는 멋짐이지만, 사실은 무능이며 어리석은 고집일 뿐이다. 


한편,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내가 뭔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방법이다.

"내가 뭔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비로소 옳은 길을 찾게 위해 질문을 하게 되고 경청을 하게 된다. 바로 지혜로움의 시작이다. 흔히 독서나 강의, 코치를 통해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데, 그것들은 이른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며 정답이 아니다. 그런 불완전한 지식으로 "내가 옳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말하는 "정답"을 이해하고 따르거나, 혹은 그것에 부합하는 얘기를 하는 자들과 어울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마지막에는 남 탓만 남는 조직이 된다. 관료화를 넘어 정치화 조직을 만들어 버리는 최악의 리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자들은 완전히 모르는 것보다 절반쯤 아는 것이 더 위태롭다고 했다.


예컨대 리더라면 누구나 강조하고 또 실패하는 "소통"의 경우를 보자. 소통은 주장하고 설득하거나, 혹은 협상을 하는 과정이 아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생각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소통은 나와 생각이 다른 의견에 진심으로 경청하고, 그것을 수용할 때 완성된다. 격물치지로써 내가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 속에서 열심히 더 많은 소통에 나서면 어떻게 될까? 주장과 설득이 앞서면 결정과 지시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상명하복의 전형적인 관료조직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이며 소통이 아니다. 관료화를 극복하려고 소통을 강조하면서 정작 관료화를 지향해버린 아이러니 상황이 되는 것이다.


리더가 공약을 마지막까지 지키면서 그 자체로 소설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다.

나아가 신독과 격물치지로 성공에 이른다면 자신과 동료와 조직에 더없이 좋은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리포트와 리포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