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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Nov 26. 2023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대중교통을 이용해 타시에 있는 교육장소에 가야한다. 회사 담당자는 교육장소가 터미널과 가깝다고 알려줬다. 오래전이지만 나도 얼핏 터미널 근처에서 회사를 본 기억이 있어 “터미널 근처라는 거죠?” 재차 확인했다. 담당자는 “터미널과 가까워요”라고 답했다. 나는 가깝다는 말을 걸어갈 수 있는 거리로 인식했다. 담당자는 교육전날 교육장 주소를 메시지로 보내왔다. 친절하게 시간표까지 캡처해 역에서 가도 된다는 말과 함께. “택시비가 많이 나올 텐데요”라고 하자. 담당자는 교통비를 지불해준다며 안심시켰다.     

 

그 말에 나는 터미널보다 집에서 가까운 역에서 출발했다. 버스 타면 한 시간 소요되는 시간이 기차면 반으로 준다. KTX면 더 단축이다. 교육은 10시인데 원주역 9시에 도착했다. 여유가 있어 택시 대신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성격이라 기사에게 묻고 승객에게 물어, 돌고 돌아 터미널에 내렸다.    

  

근처 아무리 둘러봐도 교육장소는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가고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시하고 담당자가 보내온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약도를 보니 터미널 근처가 아니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오면서 흘러나오던 정류소 이름 근처다. 역에서 더 가깝던.  아뿔싸. 부랴부랴 택시를 다시 타고 교육장으로 향했던 교육 첫날의 소란. 택시기사의 느릿느릿한 주소 입력시간조차 타들어가던 숨 막히던 아침이었다.      


소통의 부재. 서로 통하지 않는. 각자 자신의 기준점에서 생각했던. 나는 교육장소가 아닌 오로지 터미널이라는 일부를 향해 움직이는 과오를 범했다. 터미널만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담당자가 말하길 가깝다는 의미는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면 가깝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따라간 나의 실수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세 마디 이상이 어렵다. 나는 나대로. 상대방은 상대방 데로 같은 말만 반복한다. 대화가 될 리 없다.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다. 모임이나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더 자주 실감한다. 의미 없는 대화가 계속된다. 눈높이가 되지 않으니 결국 대화 단절로 이어진다.


같은 내용인데 A와 B의 말이 다르다. 소통을 강조하지만 소통은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진정한 소통은 어렵고 힘들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이 중요하다 강조할 이유가 없다.       


사내 커뮤니케이션에 올라온 사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자리가 난 부서에 A 가 가려했는데 나이가 많아 안된다고 거절했다. 나중에 B가 가게 되었는데 그는 A보다 나이가 더 많다. 처음부터 팀이 달라 안된다고 하면 될 것을 나이가 많아 안된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글에는 모두 친절하게 답변이 달려 있는 반면 이글만큼은 답변이 없었다. 무답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리하다고 외면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침묵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전략 부서 담당자에게 그 사연 얘기를 꺼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그러자 담당자는 “ 부정적인 것만 보지 마세요 일부입니다”라는 답변을 했다. 어디에나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으니 전체로 해석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신입직원들 있는데서 그런 부정적인 얘기는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대와 다른 답변에 당황했다. 그 내용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부당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음에도 담당자는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사연자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고 하자 자기 주변엔 그렇게 말하는 사람 본 적 없다며 마무리했다. 차근차근한 말투의 그와 대화를 더 이어갔다간 피곤한 사람으로 찍힐 거 같아 관두었다. 생각이 다르니 소통은 이미 안되고 있었다.      


허술하게 흘러가는 빈틈이 잡히면 답답하다. 웃으며 말하지만 모두 친절하지 않은 말들이다.

귀는 열었지만 감당할 수 없음에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하는 조직. 부당함을 이야기하면 “꼬우면 관두던가” “ 그럼 네가 짱 해” 이런 식의 대화가 당연시되는 시절이 있었다. 소통을 강조하지만 소통은 되지 않는다. 불리하다고 답변하지 않는 비겁함. 옹졸함은 독선이다.     


소통이 중요한 건 ‘감정이 상처받지 않기 위함이다’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에 답이 없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감정이 상처를 받는다. 우리의 감정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자의 질문에 답변 없는 외로움을 본다.

본질은 외면한 체 일부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 쿠키 -

          

바삐 걸어가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 묻는다. “시민센터 가려면 어디로 가지요?” 길을 안내하고 돌아서는데 괜한 오지랖이 발동했다. 문명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저 노인이 시민센터 갈 일이 뭐가 있을까 하고. 가는 노인을 불러 세워 그곳엔 무슨 일로 가냐고 여쭈었다. 노인은 메모지를 보여주었다.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오라는 메모였다. 이상해서 “ 가족관계를 발급받는데 왜 시민센터를 가세요?”라고 물었더니 휴대폰 대리점에서 시민센터로 가라고 했다는 것.      

순간, 나는 시민센터에서 저런 일도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 전달되었음을 알고 “그걸 발급받으려면 동사무소(행정자치센터)로 가셔야죠.”라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래요?” 하면서 “ 그럼 동사무소는 어디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시민센터 근처요. 시민센터가 아닌 근처 동사무소를 가세요. 바로 옆에 있어요.       


대리점 직원과 노인의 어느 지점에서 오류가 있었는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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