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소의꿈 Nov 17. 2023

10년 후의 나를 생각합니다.


“놀 줄을 몰라서 나는 일하는 게 좋아”라고 말하는 팔순의 방앗간 주인. 그에 맞장구를 치던 엄마.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일 하라고 학교에 보내지 않아 공부가 원이었던 적도 있었던 사람들. 못 배웠지만 일은 열심히 했다. 지금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돈도 많이 벌었다. 이젠 "일이 좋아 즐거워"라고 하신다.

예전 같으면 그 말에 반박했겠지만 이젠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랜 백수 생활 끝에 얻은 진정한 깨달음이다.


나이 들어 일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왜 저렇게 일을 할까. 이제 좀 쉬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일이 곧 삶임을. 살아가는 원동력임을. 살아있다는 증거임을. 나이 들어도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경제적 여유를 떠나 일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건 강한 생명력 때문이리라.

     

백세시대 기준 이제 겨우 오십 대인데 취업이나 알바는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이젠 목소리만 들어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지 “죄송하지만 나이 제한 있습니다”라는 말을 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 목소리가 나이 들어 보이는지 확인해보기도 했다.


 긍정적인 반응에도 더 이상 일반적인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큼 최악은 없다. 뭐든 하기 위해 무언가 하는 일을 멈출 순 없었다. 꾸준히 취업사이트를 들락거리고 알바 사이트를 검색하는 ‘일’ 이라도 해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는 ‘일’도 꾸준히 했다. 일을 찾기 위한 ‘일’ 이라도 해야 무료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수의 삶이 길수록 무기력해 갔다. 직업이 있을 때의 휴가는 달달한 것이지만 늘 휴가인 사람에게 휴가는 쓴맛이다. 시시하고 재미없다. 밋밋하다. 그러므로 일을 해야 했고, 직업은 필요했다. 그렇다고 아무 일이나 할 순 없다. 배고프다고 쉰밥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무턱대고 일을 하다간 탈이 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를 찾는 게 하루 일과였다. 습관처럼 어딘가 있을 ‘일’을 찾았다녔다. 백수를 탈출하기 위해.

      

청년백수 126만 명이나 되는 시대에 준고령자의 백수는 별것 아니겠지만. 직업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망설였다. 기사를 쓰고 있으니 시민기자 라고 할까. 글을 쓰고 있으니 프리랜서 라고 할까. 이것저것 생각해 봤지만

결국 무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프리랜서 라 했다가 “음, 백수군” 이런 반응을 들은 적이 있어 괜히  민망하기 때문이다.


 시민기자라고 답하면 수입이 얼마입니까 하는 2차 질문이 들어온다. 해서 기관 담당자가 묻는 질문지에 ‘무직’으로 표기되었다. 요즘 아무리 조기 은퇴가 유행이라 포장해도 백수의 삶은 무료하고 직업이 없는 것은 위축된다. ‘무직’이라는 단어 속에 묶인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듯했다.   

        

‘무직’을 벗어난  생산적인 '일' 이하고 싶어 나는 어느새 취업이 아닌 창업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근처 매물로 나온 피자집을 방문했다. 창업한 지 한 달도 안 돼 매물로 내놓은 피자집 청년은 내게 하루 매출액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피자 만드는 방법을 시전해 보였다. 익숙할 때까지 도와주겠다는 구두약속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손익을 따져보니 안 하니만 못한 일이었다. 하루 12시간 노동에 비해 수익은 턱없이 모자란 구조였다. 모두가 폐업하는 시대에 투자를 하면서 창업을 한다는 게 무모한 도전 같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 없는 요식업이다. 피자 만들기를 간접 경험해 보니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할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일이란 것이 의욕만 갖고 되는 것도 아니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투자금도 필요 없고 나 이제 한도 없는 일은 없을까. 고민할 즈음 알바 사이트 구인난에 올라온 학습지 회사에 지원했다. 학습지 방문교사는 해본 적이 있던 터라 용기가 생겼다.


어떤 일이든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합의선이 존재한다.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때가 있다. 학습지 회사 담당자는 내게 말했다. 나이가 있어 방문교사는 안되지만 공부방 창업은 가능하다고. 수익이나 위험부담을 생각하면 방문교사가 훨씬 낫지만 공부방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게다가 공부방 투자비용은 전액 회사 부담. 못할 이유가 없는 조건이라 수락했다. 게다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학습지 회사 환경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지면보다는 아이패드를 활용한 기기 수업이었다. 아이패드 메뉴를 활용해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급선무였다.

미디어 문맹이 되지 않으려면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끊임없이 헤엄쳐야 벗어날 수 있는 개구리처럼.  나는 내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길었던 백수의 삶을 끝내고 직업을 갖고 싶은 마음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끌어올렸는지 모른다. 또한 내 삶이 지속되는 한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소비하는 삶이 아닌 생산적인 삶으로 내일을 맞이하고 싶었다. 직업인으로서의 ‘나’ 직업으로서의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더 이상 놀고 싶지 않았다. ‘무직’에 익숙한 ‘나’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일이 하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입사지원서에 썼다. 담당자가 조금 길게 쓰라고 해서 '느리지만 천천히 나만의 페이스로  10년 후의 나를 생각한다. 아니 20년 후의 나를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2차 3차 면접을 거쳐 교육이수를 하고  그렇게 나는 공부방 창업 준비를 했다.

 

22일 계약서를 쓰니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스타트업 청년처럼 두근두근 설렌다. 팔순의 나이에도 '일' 하고 있을 내 모습을 꿈꾼다. 꿈은 잘 때 꾸는 거라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지만 그래도 꿈꿔본다. 내 삶이 숨 쉬는 이 일이 즐거워라고  말하는 꿈.   직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하는 팔순을 꿈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