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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22. 2023

회사의 잘못인가, 내가 못난 걸까?

세 번째 퇴사를 앞두고 들여다 본 진실

지난 금요일이었다. 퇴근 20분 전, 오늘은 기필코 회사에서 마무리하고 가야지 마음먹은 일이 있었다. 바로 팀장님과의 퇴사 면담. 주말 후 월요일 이야기를 드려도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을 테지만, 단 하루라도 빨리 이 회사를 벗어나고 싶었다. 11월 달력을 보며 계산했다. 주말을 끼고 월요일에 보고를 드리면, 3일은 회사에 더 나와야 했다. 무의미하게 흘러갈 내 소중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퇴사 통보가 나의 충동과 기분에 의한 우발적인 결정이 아닌지 자문하고 또 자문한 다음,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5분만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마음속에 품고 다닌 사직서를 내보일 순간이 왔다. 이 짧은 면담의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되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팀장님과 마주 앉았다. 내 생애 3번째 퇴사, 결혼한 지 2개월 만의 자발적 경력 단절을 책임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퇴사를 하고자 면담 요청 드렸습니다"

바쁜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와 함께, 돌려 말할 필요도 없이 퇴사를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생각지도 못한 나의 퇴사 선언에 팀장님은 꽤나 놀라고 당황해하며 퇴사의 이유를 물었다. 퇴사의 이유라... 진실의 종을 울릴 것인가 말 것인가. 좋은 게 좋다고 조금은 비겁하지만 그냥 좋게 끝내고 나올 것인가. 회사에 대한 나의 평가가 오만과 자만으로 똘똘 뭉친 편견 덩어리는 아닐지.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마주 앉은 그에게 퇴사의 이유를 얼마나 솔직하게 전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단 한 가지의 이유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회사 평가에 대해 내 오만과 편견에 갇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솔직함과 비겁함 사이에서 그날 나는 50%의 진실만 말하기로 했고, 퇴사의 이유를 회사의 문제가 아닌 내 문제로 돌렸다. 사회적 자아가 승리했다기보다, 사실 회사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남아 있지 않기에 회사에 대하 말 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아, 제가 결혼도 했고 내년에 남편과 외국에 나갈 거 같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수월할 것 같아서요"

사실 구체적인 계획도 확정된 사안도 아니지만, 남편과 나의 장기적인 목표이기에 거짓말은 아니었다. 곰곰이 내 이야기를 듣던 팀장님은 내 이야기가 끝난 후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혹시 회사에 불만이 있거나, 서운한 점이 있는 건 아니구요? 예를 들면, 회사의 방향성이 자꾸 바뀌어서 신뢰를 잃었다거나 연봉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서운하다거나..."


말은 안 했지만 팀장님은 내 퇴사의 본질적인 이유를 다 알고 있었다. 그는 내심 내가 솔직하게 퇴사 이유를 들려주리라 기대하는 것 같았지만, 난 결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질문에 또다시 50%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대로 진행조차 되지 않은 연봉 협상이나 회사가 입사 전부터 약속한 것들이 자꾸 무산되고 지켜지지 않는 것은 서운하긴 했지만, 그것 자체가 퇴사의 이유는 아니라고. 미련도 없다고. 그리고 회사가 방향성을 자꾸 바꾸는 것은 스타트업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지금 그리는 방향은 잘 될 것 같다고. 언제까지 일할 수 있냐는 팀장님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딱 한 달 뒤까지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 후 회사를 나왔다. 이별을 결심한 사이에서 상대에게 솔직한 내 감정을 전달하는 건 정말 애정이 남아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에너지 소모가 엄청 큰 일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1년 2개월 간의 회사 생활의 마침표를 선언한 그날, 마음속에 품고만 다니던 사직서를 드디어 세상에 내보였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후련했다. 나의 예기치 못한 퇴사로 회사를 한 방 먹인 것 같은 기분에 통쾌하면서도 그런 마음을 가진 작은 악마가 내 안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병들어가던 나의 마음을 잘 돌보기로 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하루였다. 기나긴 미팅을 끝내고 업무를 하다 속이 너무 답답해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들어가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내 안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 차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감정을 외면만 하다 보니 결국 터진 것이다. 일을 한 지 1년 2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많은 동료들이 비슷한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기회를 준 회사에게는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니까.


'몰입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회사의 잘못일까? 내가 마음을 바꿔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내가 끈기가 없는 게 아닐까? 결혼도 했는데 무책임한 게 아닐까?'


회사와 나 사이에 불분명한 책임 소재에 쉽사리 결단을 내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출근을 한 지 2~3주, 스트레스로 밤잠을 설치고 개인적인 삶에 의욕조차 없어졌다. 불씨조차 남지 않은 열정을 불러일으키려 노력했지만, 마음을 바꿔 먹는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은 나에게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세 번째 퇴사를 앞두고 있다. 퇴사로 인한 두려움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든 스스로 세상에 나를 증명해 봐야겠다는 절박함이 더 크다. 때문에 나의 소중한 감정과 영혼이 다치지 않게 잘 돌보는 게 우선순위라는 걸, 회사를 다니면서 깨달았다. 무기력이 내 삶을 먹어 치우지 않도록.


감정은 진실하고 직관적이다. '이건 아닌데'라고 느낀다면, 아닌 것이다. '행복해', '불안해', '변화가 필요해'라고 느낀다면 그런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의식의 기저에서 빼꼼 고개 내미는 감정을 잘 돌보는 것은 이성이 지배하는 현생을 더 잘 살아내는 방법일 것이다. 세 번 째 퇴사를 앞두고 있다. 삶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투쟁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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