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마냥 멋져 보였다. 여권이라는 국제 신분증을 들고, 기차나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라는 거대한 물체에 올라 심지어 하늘과 바다를 건너, 영어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딴 세상 사람 같았다. 굉장히 똑똑하거나, 부유하거나, 특별한 직업을 가진 범접할 수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소위 ‘럭셔리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해외여행이나 해외 취업을 상상하기는커녕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여권조차 없던 내가 이제는 해외 취업과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 어디든 내 맘대로 갈 수 있는 특별한 직업이라도 얻었거나 큰돈이라도 번 걸까? 전혀. 하지만 나는 더 잘 살고 싶은 내 생존 본능에 충실하며, 내가 원하는 생존의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국 밖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내가 살 곳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10여 년 전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접하면서 확고해졌다. 책의 저자인 유시민 작가는 우리 모두는 내가 태어난 나라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자유가 있으며, 이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두 가지 있다고 말한다. 한 가지는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강제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야 했던 한국인도 많았지만, 스스로 이민을 선택한 사람도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발적 이민은 존중해야 마땅한 삶의 설계이며,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실존적 선택이다. 다른 하나는 내 마음에 들도록 국가를 바꾸는 일이다. 이것 역시 존중받아야 할 실존적 선택이다. 이어 작가는 좋은 국가란 결국엔 각자의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인으로 평생 한국에서 살다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에 처음 여권을 만든 후 38개 국을 여행하고 4개 국에 사는 동안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은 더 넓어지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배포도 조금은 더 커진 것 같다. 가장 큰 수확은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서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며 당연한 것들에 반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을 꼭 가야 하나?’, ‘내가 살 곳을 선택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등 질문은 질문에 꼬리를 물며 또 다른 길로 나를 인도했다. 결국 단기 해외여행은, 중장기 해외 유학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이민을 고민하고 있는 걸 보면, 인생은 정말 순간순간의 점을 잇는 일이다. 결국 나는 나에게 맞는 국가를 찾은 것 같다. 한국보다 조금은 더 나와 어울리는.
내가 그리는 삶
해외여행, 해외 유학, 그리고 해외 이주(이민) 등 ‘해외'라는 말이 들어가면 무언가 괜히 근사해 보이면서도 괜히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도전 같다. 하지만 가능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안 그 어디쯤 사이에서 멘땅에 헤딩하다 보면,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위험과 불안의 역치가 조금은 더 높아지는 것은 물론,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덕분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니까.
전 세계가 연결된 오늘날이라지만, 인류는 원래 연결된 존재다. 호모사피엔스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왔으니까. 때문에 우리는 다르면서 다르지 않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이 내게 익숙한 환경 너머를 탐구하고 탐험해야 한다. 비로소 그때 우리는 내가 그리는 행복의 모습에 가까운 삶을 발견하고, 그 삶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낼 것이다. 해외 취업이나 이민은 근사하고 어떤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