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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un 26. 2024

한국만큼 워라밸 없는 호주, 왜 훨씬 행복할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돈보다 자유와 연결

생각보다 닮은 한국과 호주

유색 막대: 호주, 빗살 무늬 막대: 한국 (출처:https://www.oecdbetterlifeindex.org/countries/australia/)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매년 발행하는 Better Life Index (더 나은 삶을 위한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와 호주는 두 가지 분야에서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지수는 OECD에서 각 국가의 웰빙 지수를 비교해 나타낸 것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수적인 11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조사한다. 특히, 직업이나 소득과 같이 경제적인 요소 외에도 환경, 교육, 커뮤니티, 치안, 일과 삶의 균형, 삶의 만족도 등 '삶의 질' 측면을 함께 고려해 비교했다는 점에서 종합적이고 의미가 있다.


호주와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시민 정치 참여도를 지닌 반면, 가장 낮은 일과 삶의 균형을 자랑하는 나라이기도하다. 일과 삶의 균형, 소위 '워라밸'이 좋을 거라 생각했던 호주이기에 이 지표는 정말 흥미로웠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하루의 대부분을 일에 쏟는 피고용인의 비율이 OECD 평균은 10%, 호주는 13%, 한국은 약 20%였다. 두 나라 모두 평균을 뛰어넘으며, 워라밸이 좋지 않은 국가라는 오명을 쓴 셈이다. 여행 초반 밤늦게까지 환하게 켜져 있던 시드니 달링하버 근처의 수많은 빌딩이 떠올랐다. 서울의 여의도가 겹쳐 보여 함께 걷던 남편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호주는 워라밸이 좋다고 들었는데... 오후 3시만 되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서 모든 카페는 문을 닫는대. 근데 불이 켜져 있는 이 빌딩들은 다 뭘까? 여기도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주의 실상을 알게 된 건 멜에서 만난 한 교민 분 덕분이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호주 사람들은 다 퇴근하자마자 해변가에 놀러 가고 여유롭게 산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호주에 10년 넘게 살면서 느낀 점은, 호주 사람들 중 성취 욕구가 큰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더라고요. 대부분은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직종과 사람에 따라 한국인들보다 더 경쟁적이고 일을 우선시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긴 부와 명예 또는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근원적인 욕구 아니던가?내가 노력하는 것만큼 성과가 따라오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호주 직장인이 K-직장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야근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니까. 야근이 성장과 승진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라면, 상사와 회사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하는 야근보다는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다.



한국에는 없고, 호주에는 있는 것

유색 막대: 호주, 빗살 무늬 막대: 한국 (출처:https://www.oecdbetterlifeindex.org/countries/australia/)

그렇다면 호주와 한국이 가장 극명하게 다른 점은 뭘까? 환경, 건강 지수와 관련해서도 호주와 한국은 차이가 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주제는 바로 '커뮤니티'였다. '내가 힘들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사회가 얼마나 결속되어 있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호주인의 93%는 의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다고 응답한 반면, 한국인은 80%만 그렇다고 답했다. 41개국 중 한국을 포함해 콜롬비아, 그리스, 멕시코만이 OECD 평균인 80%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인다.


슬픈 우리나라의 자화상에 최근 연일 뉴스에서 회자되는 고독사 급등 문제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은둔형 청년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위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20%는 그렇게 외롭게 사회로부터 삶으로부터 단절되어 가고 있구나.  대부분 고독사나 은둔을 선택하는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 심리적으로도 점점 위축되고, 주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력으로만 한 사람을 재단하는 우리나라 '천민자본주의'의 결과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역설적으로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존재가 있는 것은 생명의 동아줄과 같을 텐데, 언제부터 우리는 단절을 택했나? 오래전부터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를 정도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는 피상적일 수 있다지만, 1인 가구의 증가세가 대변하듯 가족들은 점점 해체되어 가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거리조차 멀어지니, 우리가 외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5/25일 참가한 멜번 앨버트 파크런

호주는 어떨까? 동양은 가족 중심, 서양은 개인주의 사회라 흔히 생각하지만, 실제로 호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족친화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곳이다. 개인적으로 2년 동안 살았던 스웨덴을 비롯해 다른 유럽 국가나 호주까지, 서구 사회는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독립적이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느꼈다. 가족이라는 집단 내 건강한 개인주의가 자리 잡은 결과다. 면, 한국의 가족 문화는 부모자식 간의 평생 의존적인 성향이 크다.

한편, 호주에서는 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어 있다. 여행 중 러닝 커뮤니티인 Melbourne Albert Parkrun (멜번 앨버트 파크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토요일 아침 8시 천여 명의 사람들이 Albert Park(앨버트 공원)에 모여 시작 총소리와 함께 5km를 뛰거나 걷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혼자 또는 가족, 친구 반려견과 함께 참여하거나 심지어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뛰는 사람도 있었다.


모임 운영자에 따르면, 처음엔 35명 정도에 남짓했던 이 커뮤니티가 몇 년 새 1천여 명의 참가자와 30 ~ 40여 명의 자원 봉사자가 함께하는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달리기 후 삼삼오오 브런치를 함께하기도 하며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특히 멜번 파크런은 이민자가 모여 사는 멜번에서 국적, 성별, 고향, 직업 등에 상관없이 모든 이가 환영받고, 받아들여지는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수용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일인가.



진화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양질의 '(내가 좋아하는) 사회적 관계'를 쌓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 사회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직장 상사, 시댁, 처가, 선후배 등 '의무적인 사회적 관계'를 위해 떠밀리기 때문이라고한다. "거창할 것 없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강한 개인주의를 탕으로 한 양질의 사회적 관계. 긴 업무 시간이 우리가 불행한 가장 주된 이유인 줄 알았는데, 우리의 외로움이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절대적 빈곤을 벗어난 지금, 우리에게 물질적 충족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시간과 삶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건강한 개인주의와, 주변을 향하는 따한 관심과 손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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