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하나에 담긴, 세 개의 세계

[6] 호주에서 태어날 한국 영국 혼혈아기 이름 짓기

by 국경 없는 펜

우리 아기는 곧 호주에서 태어난다. 아빠는 영국인, 엄마는 한국인.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세 나라의 이야기를 품은 아이다. 태어나는 즉시 영국과 한국의 복수국적자가 되고, 앞으로 우리가 호주에 정착한다면 영주권자 혹은 호주 시민권자가 될 수도 있다. 시민권을 택할 경우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 하지만, 선택은 아기의 몫으로 남겨둘 것이다.


국적의 문제보다 더 실감 나는 고민은 ‘이름’이었다. 이름은 국적보다 먼저 아이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세 나라의 언어와 문화가 교차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부부는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할까? 많은 고민이 되었다.


호주에서 만난 다른 한인 부모들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대부분 영어와 한국어 두 언어를 함께 사용한다. 그래서 ‘양쪽 모두에서 자연스럽게 들리는 이름’을 찾는 경우가 많다. 발음이 쉽고 연음 받침이 없는 이름들, 예를 들면 재인, 아린, 이안 같은 이름이 인기를 끈다. 특히 영어권에서 교사가 부르기 어렵거나 친구들이 잘못 발음하는 경험이 아이에게 ‘작은 상처’로 남는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었다.


우리 부부가 이름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한국어와 영어로 모두 자연스럽게 발음될 것.

둘째, 영국 또는 호주와 한국에서 이질감이 없는 이름일 것.

셋째,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 것.


아이에게 영국과 한국, 그리고 호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함께 자리할 테지만, 한국에 살게 될 경우 단일민족적 분위기 속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임신 중 내내 수십 개의 이름 후보를 두고 토론했다. 이름 사이트를 뒤지고, 챗GPT에게 “영국·한국 혼혈아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물어보기도 했다. 영어권에는 성과 이름 외에 ‘미들네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 가지를 약자로 썼을 때 어색하거나 이상한 뜻이 되지 않는지도 일일이 확인했다.

우리가 지어준 이름을 좋아할까?


남편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이름 하나 짓는 게 이렇게 어렵나?” 하며 웃은 적도 많았다. 결국 남은 후보는 단 두 개. 그중 하나는 남편의 사촌 이름과 비슷해 제외했고, 마지막까지 남은 이름은 남편이 처음부터 좋아하던 이름이었다. 이름을 정하고 나서도 한동안 그 이름을 입에 굴려보았다. 그 이름이 우리 아기와 어울릴까, 한국과 영국 가족들이 부르기엔 어렵지 않을까, 호주 친구들이 들었을 때 이질적으로 느껴질까 자연스러울까. 이 모든 질문이 결국 하나로 이어졌다.


“이름을 통해 우리 아이가 어디에서든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을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 사람의 존재가 사회 속에 자리 잡는다. 한국에서는 이름에 인생의 운명을 담는다고 믿어 사주팔자를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에겐 오히려 이름이 ‘문화적 다리이자 아기의 정체성’ 역할을 하지 않을까 결론을 내렸다. 우리에겐 그 다리 위에서 세 세계를 잇는 이름이 필요했다.


요즘은 ‘다문화’, ‘글로벌’이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실제로 세 문화의 경계 안에서 아이를 키우며 ‘이름 하나’가 가진 무게를 이렇게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언어가 다르면 세계가 다르고, 이름이 다르면 불리는 존재의 느낌도 달라진다. 김춘수 시인의 시가 문득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가 지은 이름이 우리 아기의 빛깔과 향기에 어울리는 이름이길 바란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아이가 자신만의 세계를 피워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부모로서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첫 번째 ‘정체성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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