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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Nov 19. 2022

등린이의 동네산 탐방기, 삼악산

나를 위해 관심도 없던 산에 같이 가주겠다던 남편은, 나와의 첫 등산에서 내가 백만 번도 더 얘기한 대로 힘들게 올라간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상쾌한지 알겠다고 했다 (세뇌가 된 거겠지?). 그리고 내가 계속 산에 다니고 싶다면, 앞으로도 계속 같이 가 줄 테니 위험하게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다. 그러더니 적극적으로 우리가 같이 갈 만한 산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착한 남편아, 이러니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고 배기겠어?


우리가 처음 갔던 대룡산만 해도 올라가는 길이 여러 군데이고, 올라가는 길마다 풍경과 길 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아와서, 우리는 그 뒤로 대룡산을  번이나 더 다녀왔다. 어떤 길이 제일 다니기 좋은지 확인하고, 대룡산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자 남편은 다음 등산 목표로 삼악산을 정해왔다.

삼악산은 약대 4학년 때, 약사고시 준비를 하면서 우리 학년 전체가 심기전하는 마음으로 같이 올라갔던 추억이 있는 산이었다. 정상까지 가는 사람은 약사고시에 합격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가며 올라갔었는데, 최종 네 명만 정상까지 올라갔고, 그 네 명 중 한 명이 나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란 인간은 악으로 깡으로 하는 건 어떻게든 해낸다는 것을 보며, 사람 참 변하지 않는구나 싶다.

게다가 워낙 유명한 산이라 남편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친정 부모님과도, 딸을 데리고도 가봤을 정도로 여러 번의 경험이 있는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나섰다.


삼악산은 등선폭포 쪽에서 올라가는 입구와 의암호 쪽에서 올라가는 입구가 있는데, 의암호 쪽은 경사가 있고 바위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풍경은 더 볼만 하지만), 이번에는 등선폭포 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명산답게 매표소가 있고, 입장료를 받지만 우리는 호수권 주민이기 때문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싸!



기분 좋게 아기자기한 폭포를 보며 걸어가는데, 물티슈 봉지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쓰레기를 보면 잘 줍는 편이지만, 정상까지 쓰레기를 들고 가야 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워 고민하고 있던 찰나, 남편이 그 쓰레기를 줍더라. 잠시 고민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고, 주저하지 않고 쓰레기를 줍는 남편이 참 예뻤다. 가방을 뒤적뒤적 찾아보니 다행히 강아지 배변 봉투가 있어 쓰레기를 그 봉투에 담고, 올라가면서 눈에 띄는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다음엔 집게도 가져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몇 번 와 본 산이라고 가는 길목길목 기억이 났다. 신혼 때 남편과 둘이 와서 도토리묵 먹었었는데, 그때는 정상까지 가보지도 않았지, 아마? 아! 몇 년 전, 아이와 함께 왔을 때 여기서 사진 찍었었는데,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다, 등등 추억을 곱씹는 중에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대노야, 너 저기 커다란 바위 뒤가 뭔지 알아?"

"뭔데?"

"저기서 우리 딸 급똥 해결했잖아!"

그랬다. 딸이 어렸을 때, 산 중반까지 올라와 갑자기 급똥이 마렵다고 하는데 화장실도 없는 이곳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을 때, 다행히 커다란 바위가 자연적인 가림막이 되어 딸아이가 덜 부끄럽게 급한 볼일을 해결했던 곳이었는데...... 그래서는 안되었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이제 와서는 추억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대노야, 이렇게 다시 와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좋다. 우리 매년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보는 건 어떨까? 한해 한해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볼 수 있는 거, 기억할 수 있는 거, 기록해두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은데."

아이가 급똥을 해결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때를 재현해보는 남편,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는 조금 더 경사가 있는 곳이다.



명산이라 그런 건지, 주말이라 그런 건지 등산객이 무척 많았다. 고즈넉한 산의 운치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단체로 온 등산객들도 많아 길목이 좁은 곳에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시끄럽고, 게다가 쓰레기도 곳곳에 많이 떨어져 있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상은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시끌벅적한 틈에서 그 많은 단체 관람객들이 인증사진 찍는 것을 기다리고 싶지도 않아 그쪽으로는 가 볼 생각도 들지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옆쪽으로 비껴서 하늘과 주변 산이 나오게끔 구도를 잡아 남편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는데, 내가 선정한 자리가 좋아 보였는지 정상 인증을 마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남편 사진만 찍고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상에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내려오는데 다람쥐들이 보였다. 아~ 예전에도 다람쥐 만났었는데. 이것들 사진 좀 찍게 기다려주지, 참 야박하게도 눈 마주치자마자 날쌔게 나무를 타고 가버린다.

"남편, 예전에 왔을 때 가재도 잡아서 보여줬는데, 지금도 가재가 있을까?"

"찾아볼까? 보통은 물이 흐르지 않는 곳의 돌을 들춰보면 찾을 수 있거든."

이 돌, 저 돌 뒤적이던 남편이 가재를 찾아 보여준다. 가재를 찾았다는 것도 기쁘지만, 이 또한 추억이 연결되는 것만 같아 몽글몽글해진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자마자 가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준다.

가재야, 고마워. 이렇게 또 추억을 만들어줘서~


올라가며 내려오며 쓰레기를 주웠더니, 배변봉투 하나가 꽤 찼다. 쓰레기를 봤을 때의 불편함이 이 봉투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곳에 쓰레기 분리배출하는 곳도 있는데, 도대체 뭐가 어려워서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걸까. 자기가 만든 쓰레기로 산을 망가뜨리면서 자기 몸 챙기겠다고 등산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화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좋지 않은 기분도 쓰레기봉투와 함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앞으로는 사람 많은 유명산보다는 동네산을 찾아다니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처음엔 어떤 산이라도 상관없었는데, 사람 많은 명산, 삼악산에서의 좋지 않은 경험이 동네 산 탐방기라는 주제를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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