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성공적인 산행을 마치고 나서 남편은 앞으로도 산에 같이 가 줄 테니 위험하게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 나는 주말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갈 때마다 마주쳤던 아줌마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 혼자 산에 갔는데, 그날은 날이 흐리고 산에 안개도 끼어서 그랬는지, 오고 가는 동안 아저씨 한 분만을 만났을 뿐이었다. 차라리 아무도 안 만날 땐 덜 무서운데, 그런 상황에 누군가를 만나는 건 너무 무섭더라. 조금 덜 무섭게 남편이 계속 전화 통화를 해주었지만, 혼자 산에 다니는 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며칠 후, 남편이 목봉을 하나 들고 집에 왔다. 고집부리고 혼자 산에 갈 때 들고 가라고 했다. 체력이 달려 등산스틱조차 버거워하는데 그걸 어떻게 들고 가냐고 내가 투덜거리자, 봉을 양손으로 잡고 휘두르며 검도 연습을 하면 누군가를 만나도 덜 무섭지 않겠지 않냐며, 손목에 끼고 다닐 수 있게 줄도 달아 주었다.
목봉을 들고 검도 연습하면서 산에 가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 구역 미친x라고 생각할거라나......
주말에 남편과 목봉을 하나씩 들고 삼악산에 갔다. 삼악산은 여러 차례 올라본 경험이 있어, 오랜만에 갔는데도 그곳에서의 추억이 하나하나 떠올라 참 좋았다. 딸이 어렸을 때, 아이가 산에 오르는 중 급똥이 마려워 큰 바위 뒤에서 처리했던 일이며, 곳곳에서 어떤 자세로 사진을 찍었는지 남편과 기억을 더듬으며 오르자 그 산에 내 시간이 묻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대노야, 우리 매년,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자. 우리만의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매년 우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담아보는 거야. 어때?"
"어떻긴 어때, 나야 물론 좋지! 그런데 우리 딸이 같이 가줄까?"
"좋아하는 색깔의 예쁜 등산화를 사준다고 해봐. 같이 가지 않을까?"
얼마 전, 내 등산화를 산 곳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보라색 등산화를 본 기억이 났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시내로 나갔다. 남편도 등산화를 새로 장만하기로 하고 함께 간 매장에서 남편이 등산화를 고르는 동안, 아이에게 보라색 등산화를 살짝 내밀며 물었다.
"딸, 이 등산화 예쁘지? 네가 좋아하는 보라색이다. 너도 산에 같이 가면, 사줄 텐데......"
"진짜? 이 등산화 사주면, 나도 같이 갈게!"
보라색 등산화에 눈이 먼 딸이 미끼를 덥석 물었다.
"등산화만 받고, 산에 안 가려는 거 아니야? 산에 가지 않을 거면, 등산화는 필요 없잖아."
"아니야, 같이 간다니까!"
흐흐흐, 걸려들었어!
가볍게 물병 하나 들고 나 혼자 산에 오르는 걸 꿈꿨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커져 버렸다. 목봉을 시작으로 등산화에, 등산 가방, 등산스틱, 산악용 물병에 컵까지. 이젠 가볍게 오르기는 글렀다. 그래도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내가 좋아하는 산을 가족과 함께 갈 생각을 하니 어찌 좋지 아니한가. 가벼움은 기꺼이 포기하련다.
호들갑 떨지 않고 가볍게 하리라 마음먹은 등산은 이미 글렀다.
남편과 나는 목봉을 들고, 딸에게는 등산스틱을 쥐어주고, 새신을 신고, 뜨거운 물과 커피, 계란, 김밥, 컵라면, 사탕과 초콜릿까지, 가벼움 대신 두둑함을 새 가방에 담아 금병산으로 향했다. 사계절 중 겨울에 오르기 가장 좋은 산으로 가을이면 낙엽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수목이 울창하다는 이웃님의 정보를 가지고, 겨울에도 오를 정도면 사춘기 딸의 투덜거림이 그나마 가장 덜하지 않겠냐는 남편의 말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웃님 블로그를 참고하여 김유정 역 근처, 김유정 박물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김유정 역 레일바이크를 타러 와보기도 했지만, 김유정 박물관 가까이까지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산 입구로 가기 위해, 김유정 박물관 일대를 둘러보다 보니 고즈넉한 옛 풍경과 황금빛 잔디에 가을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산 입구로 향하는 길 옆엔 노오랗게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데크를 깔아놓은 길이 그저 산책하는 느낌을 주어 산행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쌀쌀해진 찬바람에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코로나 감염 이후, 아직 회복되지 않은 컨디션 탓이었다. 다행히 우리밖에 없어 아이의 기침소리가 그렇게 눈치 보이는 상황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아이가 힘들어하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화가 잔뜩 난 아이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찬바람 때문인지 기침이 더 많이 난다고! 나는 아직 산에 갈 정도의 컨디션이 아닌데 꼭 나까지 데리고 가야 해?"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지만, 사탕을 입에 물리고 따뜻한 물을 먹이면서, 등산스틱을 가방에 넣고 내 목봉을 아이 한 손에 쥐어주고, 다른 한 손은 내 손에 꼭 잡고 산으로 이끌었다.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데리고 온 내 실수를 탓하며, '신발 사주면 산에 같이 가겠다더니!'라는 혼잣말을 속으로 삭이며, 수행하는 기분으로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끌어주었다.
그렇게 40분쯤 올라갔을까. 맞바람 때문인지 아이의 기침이 점점 심해졌다. 아이의 기침을 탓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도 산행을 즐겨보지 않으려는 아이의 태도에 나도 점점 지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냥 내려가자. 좋자고 올라가는 건데, 이렇게 산에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내 말에, 남편은 조금만 더 올라가면 쉬어갈 만한 곳이 나올 거라며 가방에 잔뜩 싸온 김밥과 컵라면만 먹고 내려가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쉼터는 아니지만, 평평하고 커다란 돌이 있는 곳에서 라면과 김밥만 먹고 우리는 바로 내려왔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끌고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십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고 내려오는 내내 기침 한 번 하지않는 딸의 선택적 컨디션에 황당하기까지 했다.
내가 그렇게 까지 해서 아이를 산에 데리고 가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체력 때문이었다. 아이는 체력이 약해 놀이공원이나 워터파크에서 하루 놀다 오면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요즘 들어 공연 일정도 많아졌는데, 공연을 하고 나서도 며칠간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하루살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체력이 안 좋았다. 그런데 우연찮게 내가 산행을 시작하면서 체력이 좋아지는 걸 느꼈기 때문에 아이에게도 이 좋은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건데, 1km도 안 되는 거리를 가면서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다니. 친정엄마가 아이를 한라산에 데리고 올라가면서 왜 울었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미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이 데리고 금병산에 가려고 했는데, 올라가다가 포기했어. 찬바람에 기침을 하는데, 컨디션도 안 좋은데 끌고 왔다고 어찌나 찡찡거리는지. 엄마가 한라산에 데리고 가면서 왜 울었는지 알겠어. 엄마 미안하고 고마워."
엄마는 아이 기침하는데 데리고 나갔다고 나를 타박하면서도, 내가 엄마 마음을 이해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 고소했는지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산 중에 제일 힘든 산이 어디인지. 그건 바로 사춘기 딸이랑 오르는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