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룡산에 오르기 위해 차를 끌고 나섰다. 고은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보니 이미 여러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김밥을 먹으며 산에 오를 준비를 하는 아저씨들, 다른 일행을 기다리는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등산복에 등산화, 등산가방에 스틱까지 무장을 한 등산객들을 뒤로하고 등산화에 물병 하나 들고 가볍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안내도를 살펴보고 첫날이니 무리하지 말고 46분 거리인 9 지점까지만 찍고 돌아오자고 마음을 먹었다.
등산로에 들어서자 바로 오른쪽에 글램핑 콘셉트의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기웃기웃 구경해가며 걸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호흡이 가빠지고, 땀이 나기 시작한다. 경사가 가파른 길은 아닌데 돌밭길이라 쉽지 않다. 돌밭길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자 경사가 꽤 가파르다. 10 지점에 도착, 벤치에 걸터앉아 물을 들이켰다. 10 지점까지는 중간에 쉴 곳도 없지만, 한 번 쉬지 않고 올라오는데 30분은 걸린 것 같다. 등산안내도에는 16분 걸린다고 쓰여있는데, 아무래도 내 체력이 평균 이하인가 보다. 10 지점부터 9 지점까지 가는 길은 오히려 조금 더 수월한 것 같다. 계속 오르막길이지만, 돌밭길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30분 코스인데, 40분 걸려 올라갔다.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글램핑컨셉의 식당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통 돌로 가득한 길이 이어졌다. 낙엽에 가려 사진엔 잘 담아지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상까지 가는데, 9 지점에서 돌아가자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70분 올라왔으니, 20분만 더 올라가 보기로 한다. 9 지점에서 그렇게 올라오니 와우, 짜잔 하고 산림욕장이 나타났다. 산길을 걸어 올라왔으니 나무 가득한 산림욕장이 신기할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썬베드 느낌의 의자들이 놓여 있어서 가벼운 먹거리와 읽고 싶은 책을 싸가지고 와서 쉬다 가면 좋겠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개들도 있고,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 살랑살랑 바람이 땀을 식혀주자, 보송보송 개운한 기분이 들어 너무 좋다. 바람을 맞고 싶어 걸음을 재촉해본다. 힘들게 올라가서일까, 내려오는 길은 가뿐하고 상쾌하기만 하다. 내려오는 데는 약 50분쯤 걸렸다.
1.8km 쯤 올라오자 산림욕장이 나타났다. 나무로 가득찬 공간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마루, 코코, 루루와 함께 나선 산행을 실패하고, 남편과 함께 다시 대룡산을 찾았다. 정상까지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러 번 와봤다고 남편을 리드하는 나, 쫌 멋있다.
올라가는 길에, 물병 하나 들고 가뿐하게 내려오는 등산객을 보고 남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야. 이것저것 싸들고 다니면서 호들갑 떨지 않고, 등산화에 물병 하나 들고 다니는 저 아저씨처럼 체력 하나로 가뿐하게 산과 마주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산림욕장도 소개해주며 계속 올라가는데, 정상을 얼마 남기지 않고 갑자기 차도가 나타났다. 지난번 코코와 함께 갔던 임도가 여기까지 이어지는 모양이다. 중간에 뚝 끊긴 등산로 탓에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봐야지. 임도가 정상 가까이까지 이어지다 보니 차를 끌고 온 아주머니들이 도토리를 모으고 있었다. 오고 가는 길에 다람쥐도 만났는데, 그 다람쥐들 겨울 날 수 있을 정도가 가져가길 마음으로 빌었다.
드디어 정상! 춘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봤으니 빨리 내려가고 싶은데, 남편이 자꾸 더 보고 가잔다. 우리 집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장소를 찾아보자며. 난 정상을 찍고 싶어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다 봤는데, 뭘 자꾸 보라는 거야!"
"대노야, 우리 집 찾아봐. 여기서 우리 집 보여! 그리고, 저 산도 좀 봐봐. 주변에 대룡산 말고도 우리가 갈 수 있는 산이 있을 거야. 다음엔 다른데도 가보자."
남편과 실컷 춘천 시내를 구경하다 내려오면서, 남편에게 내가 왜 산이 좋아졌는지,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상쾌하고 개운한지 입에 침을 튀기며 말하자, 남편도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단다. 남편, 내 말 듣기 싫어서 아는 척하는 거 아니지?
정상까지 가보니까 알겠다. 내려올 때의 개운함은 올라갈 때의 힘듦과 비례한다는 것을. 우리가 평지를 아무리 오랜 시간 걷는다고 해서 개운한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힘들게 올라가지 않으면 내려오는 길도 그저 그럴 거라는 거, 그래서 산을 올라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