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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Jan 10. 2023

우리 동네 쌍순이

우리 집에서 복숭아밭으로 나가는 길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다. 그리고 쌍순이는 그 다리 옆에서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대항하며 살아가고 있다.


원래 이름은 상순이랬다. 그러나 상순이를 상순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게 쌍순이를 알려 준 동갑내기 동네 친구 (이 친구는 우리가 이사오기 3년 전 이 동네에 터를 잡았다.) 말로는 그들이 이사오기 전부터 쌍순이는 그 자리에 그렇게 묶여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이사 온 지도 5년이 넘었으니 쌍순이가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2미터도 안 되는 줄에 묶여 그 자리를 지켜온 건지 짐작도 안된다.


그렇게 오래도록 그 자리가 자기 터였으니 그 자리를 지키려는 쌍순이의 모습이 이해가 된다. 쌍순이는 차든, 자전거든, 사람이든, 개든, 고양이든, 고라니든 그 옆을 지나가는 모든 것에 그렇게 짖어댔다. 그냥 짖는 것도 아니고 낮게 포복해있다가 지나가는 것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개가 숨어있는 줄 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했고,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창문을 내리고 욕을 했다. 발길질로 위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쌍순이는 그들을 향해 치열하게 짖었다. 쌍순이가 있는 곳만 지나가면 복숭아밭과 사과밭이 드넓게 펼쳐진 편안한 산책길이 있지만, 쌍순이를 지나치는 게 부담스러워 그쪽 길을 포기하는 견주가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 산책길을 포기한 건 쌍순이가 우리 개들을 향해 달려드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매번 지나갈 때마다 불쾌했던 경험때문에 마루가 쌍순이 앞을 지나가기 전부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불안해하다가 쌍순이의 무례함에 대응하려 하는 게 싫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 개 산책시키겠다고 쌍순이 앞을 지나치는 게 미안했다. 처음엔 간식을 던져주며 미안하다고, 빨리 지나가겠다고 얘기하며 산책길로 향했지만, 간식 하나로 그 미안한 불편함이 줄어들진 않았다. 내가 본 5년 동안 산책 한번 나가보지 못하고 묶여있는 쌍순이에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나와 우리 개들은 차를 타고 나가거나, 차가 다니는 길로 산책을 다녀야 했지만......


쌍순이가 발정이 시작되면 어디선가 낯선 떠돌이개가 나타나 며칠이고 쌍순이에게 붙어있다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엔 대여섯 마리의 강아지들이 쌍순이가 묶여있는 전봇대 옆 다리 위를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쌍순이가 묶여 있는 곳 맞은편에는 쌍순이 할아버지네 마당 넓은 집이 있고, 그 앞 전체가 쌍순이 할아버지의 복숭아밭인데, 왜 쌍순이는 길 한가운데 터를 잡고 온 동네 사람들의 욕받이로 살아가게 되었는지, 매년 떠돌이개들의 새끼를 낳아가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사는 게 시골개의 삶인가 추측할 따름이다.

크기도 색깔도 종도 다른 마루를 보며 쌍순이와 꼭 닮았다고 말씀하시는 쌍순이 할아버지. 아침마다 쌍순이 밥을 주며 한참을 쓰다듬어주시는 쌍순이 할아버지. 오랜 시간 지켜보며 쌍순이 할아버지가 쌍순이를 예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쌍순이가 짖는다. 어느 누가 쌍순이에게 해코지라도 하는 건 아닐지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본다.

"상순아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쌍순이가 나를 향해 더 크게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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