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왼손잡이 사기꾼은 지금 행복할까?
답은 정해졌다. 넌 그저 행복하다고 말하면 된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들. 신입생 ㅇㅇㅇ입니다!”
“이 테이블 쉽지 않을 텐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온 거야?”
“네. 준비됐습니다!”
30분 후
“저 선배들 뭐야, 너무 무서워”
“그러게, 봤어? 벌써 네 명이나 실려 나갔는데, 저 언니들 다 멀쩡해.”
남편은 늦깎이로 입학한 학부 1학년이었고, 나는 4학년이었다.
남편은 입학했을 때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4학년 주당 여학생 넷이 있던 테이블에선 1학년 남자 신입생들이 한 명씩 집에 실려 나가고 있었고, 그렇게 퍼마시던 고약한 선배 중의 한 명이 나였기에, 언젠가 꼭 같이 술 한 잔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학교 축제 등에서 같은 테이블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복학생 동기를 통해 나와 통화한 적도 있었다는데도, 나는 그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설레발이 문제였다.
내가 박사과정 중이던 어느 날, 복학생 동기와 남편이 같이 술 마시는 자리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어색한 낯가림을 오버액션의 설레발로 숨기는 사회성을 지닌 나는, 통화 중 남편이 언제 한번 밥 먹자 한 말에 그러자는 말로 응수했고, 남편은 그 말을 진지하게 가슴에 새겼나 보다.
4학년 실험수업 강사로 들어간 첫날, 남편은 다시 한번 그 약속을 상기시켰고, 난 또 그러자 하고 넘어갔다.
금요일이었던가,
교수님도 일찍 퇴근하셨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3층의 실험실을 박차고 나오던 길에 계단 중간에서 남편을 만났다.
어색하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밝게 웃으며 지나가려던 나를 남편이 잡았다.
“저, 밥 먹어요.”
“네! 다음에 시간 될 때 밥 먹어요!”라는 대답과 함께 지나치려던 찰나, 남편이 다시 말했다.
“언제가 좋아요?”
헐. 이런 상호작용은 예상치 않았는데, 어쩌지 어쩌지. 인간관계와 관련된 나의 뇌는 어버버 한 상태로 작동을 멈추었다.
“네?”
“다음 주 수요일 점심 어때요? 전화할게요!”
뭐지, 이 매끄러운 전개는?
“네?”
나의 반문을 긍정의 대답으로 들었던 것일까, 남편은 다시 수줍은 얼굴로 목례하고 가던 길을 가버렸다. 어쩌지? 쟤 뭐지?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전날, 병원에서 밤샘 알바를 한 탓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그 약속의 부담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실험실에 전화를 걸었다.
“나 오늘 점심 먹고 갈게.”
“언니 밥 먹고 온다고요? 누구랑?”
“학부생”
“학부생 누구?”
“그냥 일개 학부생, 몰라도 돼.”
다시는 마주 칠 일이 없다 생각한 나는, 궁금해하는 후배에게 남편의 존재를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다.
차가 없는 학부생을 내 차에 태워 식당으로 향했다.
오올~ 여긴 이 동네에서 나름 맛집으로 유명한 소고기 집인데, 여기서 밥을 사겠다고?
진정한 육식주의자인 나는 센스 있는 메뉴 선정이 마음에 쏙 들어 속으로 남편의 이름을 기억해보려 노력했다.
‘음, 나쁘지 않네! 이 학부생, 이름이 뭐랬지?’
그 당시 나는 인기가 좀 있었다.
엄마 친구들을 통해서도 좋은 선자리가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 병원 아르바이트 중에 내게 관심을 보이는 레지던트들도 꽤 있었다.
이미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약사 선배며, 10년간 좋아했다며 한의사 자격증을 따고 짜잔 하고 나타난 과외 오빠도 있었다.
좋은 조건에 외모도 출중한 ‘오빠야’들이 주변에 넘쳐났기에, 남편은 내 관심 영역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들 자기 시간이 바쁜 사람들인데 반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넘쳐나는 일개 학부생은 매일같이 나를 찾아 실험실과 아르바이트하는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이 오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매일 점심을 일개 학부생과 먹고 있었고, 어느 순간엔 그 학부생을 평가하고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이쁜데 남자답게 생겼네. 난 키 180cm 이하는 안 보는데, 키는 좀 작고. 아쉽군’
그러던 어느 주말인가, 남편이 밥 먹고 포켓볼을 치러 가자고 했다.
몸 좀 풀고 나자 남편이 내기를 제안했다.
“내기해서 내가 이기면 한 달만 사귀어 보자. 대신 나는 왼손으로 칠께.”
‘음, 포켓볼은 나도 좀 치니까, 저 짝이 왼손으로 치면 내가 이기겠지 뭐.’
그때는 몰랐다. 남편이 쓰리쿠션 300을 치는 고수라는 것을.
아무것도 몰랐다. 남편이 왼손잡이라는 것을.
그렇게 남편이 이겼다. 그리고 우리는 한 달만 사귀는 조건으로 연애를 시작하였다.
공부하는 딸 방해될까 봐 좋은 선 자리도 다 무르고 있는 부모님께 일개 학부생과 연애한다는 말은 말도 꺼낼 수도 없었다. 아니 꺼내보기는 했지만, 들은 척도 하시지 않았다.
남편과 연애 중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르는 척하는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내가 말했다.
“엄마, 내 친구들 다 결혼했어. 나도 해야겠어.”
고집 센 딸이 결혼하겠다는 말에 엄마는 더 말리지 않았다.
다만, 상견례 자리에서 남편과 나를 천사라 칭하는 시어머니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을 뿐.
“다시 생각해 보세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A/S도 반품도 안 됩니다. 지금은 착하고 예뻐 보이겠지만, 제 딸이지만 성질이 정말 장난 아니거든요.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세요.”
여전히 남편은 성질이 저 정도면 더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친정엄마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곤 하지만, 나는 한 마디로 남편의 입을 닫게 한다.
“이봐 왼손잡이. 사기 친 건 자네라는 것을 잊지 말게! 푸하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