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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Feb 20. 2022

설거지하는 남편의 뒷모습은 오래 보지 않아도 예쁘다.1

나를 춤추게 하는 남편의 봉사, 그 노동착취의 현장.

얼마 전 지인들과 사랑의 언어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지인이 소개해준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는 2010년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베스트셀러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사랑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각자의 사랑의 언어에 맞게 사랑을 전달해야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저자는 사랑의 언어를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5가지로 분류한다.

지인은 이 책을 소개해주며, 본인과 남편은 다른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나니, 남편과 오해할 일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에 떠도는 5가지 사랑의 언어 테스트를 해 보았다. 테스트를 해 보기 이전에 나는 ‘함께 하는 시간’이 나의 사랑의 언어일 것으로 예측했다. 유독 사이가 좋은 우리 부부는 함께 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같은 취미로 시간을 보내거나 다른 일을 하더라도 항상 같은 공간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내가 목공을 좋아하는 남편의 충실한 조수로 개집이나 화단 등을 같이 만들거나, 각서 외에는 써 본 적이 없는 남편이 나와 같이 3년 일기장을 매일 저녁 쓰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위해 각자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부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예측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테스트 결과, 나의 사랑의 언어는 ‘봉사’였다. 남편과의 추억을 곱씹어 보니, 타당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생각해 볼수록, 나는 남편의 봉사(=희생)를 정말 좋아하는 여자였다.      



 

신혼 초, 남편에게 설거지를 해달라고 해놓고는 설거지를 하는 남편 등에 업혀있기를 좋아했다.

남편은 나를 등에 업은 채 설거지를 하면서도 혹시라도 내가 수납장에 머리라도 박지 않을까 싶어 최대한 허리를 굽히고, 움직일 때마다 내 머리에 손을 대주는 착한 사람이었다. 나를 업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내가 다칠까 봐 배려해주다니……. 나는 남편의 예쁘고 착한 그 마음이 자꾸 보고 싶어, 매번 나를 업고 설거지를 하게 하였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결혼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도우미 이모가 주 1~2회 집안일을 도와주셨는데 직장을 그만두고는 오롯이 내가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익숙지 않은 집안일은 해치우고 돌아서면 그대로 난장판이 되어 있기 일쑤고,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재미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느 날은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을 붙잡고는 엉엉 울며 말했다.

“오빠, 내가 잘하는 건 이런 게 아닌데 왜 내가 잘하지도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이런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쌓아놔. 내가 해줄게.”

정말로 남편은 약속으로 귀가가 늦어져 밤 12시가 넘어 들어오는 날에도 내가 쌓아둔 설거지를 해주고 출근했고, 나는 점점 설거지를 최대한 차곡차곡 많이 쌓아둘 수 있는 스킬이 늘었다.

가끔 남편의 친구가 왜 그러고 사느냐고 남편에게 핀잔을 주면 남편은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네 와이프한테 그렇게 해줘 봐. 와이프가 진짜 좋아해.”

그동안 남편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그저 내가 하기 싫은 설거지를 해주는 남편의 봉사가 좋았나 보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온 후, 마당의 벤치나 화단, 데크의 테이블, 침대, 아트월 등 많은 것들을 남편과 직접 만들어 꾸미고 있다.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목공을 내가 도와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량 같은 남편은 내가 재촉하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에게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내밀며 ‘이런 거 만들어줘’, ‘저렇게 꾸며줘’라고 요구해 온 결과, 지금 살고 있는 집 안 곳곳 남편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내가 요구하지 않았다면 남편 스스로 시작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다행히 본인도 재능이 있음을 알고, 성취감도 느끼면서 하다 보니 남편이 좋아하는 일이었던 것처럼 착각했을 뿐,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남편의 배려였고, 봉사였다.          




주말에 남편이 낮잠이라도 자면 왜 그렇게 시간이 아깝고 싫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남편이 집안에서 하는 모든 일은 나를 위한 봉사였으며, 나는 그렇게 내 대신 일하고 있는 남편이 좋았던 거였다.

남편이 낮잠이라도 자면 그 낮잠 시간만큼 나를 대신해 일해 줄 시간이 줄어드니 싫었을 수밖에.

내가 남편의 노동력을 착취할 때 그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이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니라, 본인의 노동 착취였다는 사실에 남편은 분노하고 있지만, 내 사랑의 언어가 그런 것을 어쩌랴.

남편! 내 사랑의 언어가 뭔지 잘 알았지? ‘더더더더더∞’ 행복하게 해 줄 거지?          



설거지가 귀찮아진 남편이 사들인 식기세척기. 네가 산 거니까 네가 써라, 식기세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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