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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Jul 04. 2024

땅콩사탕

추억의 맛

바스락 거리는 포장지를 살짝 비틀어 돌리면 그 안에 연갈색의 사탕 몸체가 보인다. 한여름날의 열기 덕분에 바깥 부분이 녹아 연유처럼 흘러내린 사탕은 조금만 방심하면 어느새 그 끈적끈적함과 불쾌한 감촉으로 손가락을 더럽힌다. 신중을 기해 포장지를 벗겨내고 잔뜩 녹아내린 사탕을 입안으로 쏘옥 집에 넣는다. 


땅콩사탕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어디에나 그 연갈색의 땅콩사탕이 있었다. TV위 바구니에도, 할머니가 늘 앉아 있던 의자 옆에도, 그리고 부엌 찬장에도 있었다. 심지어 장롱 밑 먼지 수북이 쌓인 공간에도 그 땅콩사탕은 떡하니 자리를 버티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하나 까먹어 볼라치면 굉장히 심심한 맛이 났다.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땅콩사탕만큼 많았던 것이 누룽지 사탕이었는데, 어린 날의 나는 그 두 가지 사탕의 맛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맛이 없는 것까지도 비슷한 사탕. 츄파춥스와 꿈틀이, 새콤달콤 같이 자극적인 사탕들을 주로 먹었던 우리에게 할머니가 즐겨 먹던 땅콩사탕과 누룽지사탕은 관심 밖 주전부리였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 사탕을 자주 드시는지 그리고 집안에 왜 그렇게 사탕이 많이 있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노년의 몸이라는 것이, 점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생기를 잃어가는 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때는 알 수 없는 나이였으니까 말이다. 가끔 할머니가 사탕을 먹으며 "당 딸려서 사탕 안 먹으면 어지러워~"라고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린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사탕을 까서 먹거나 초콜릿을 먹을 때면 외할머니댁에서 보았던 그 땅콩사탕이 떠오른다. 식당을 나서며 카운터 위에 올려진 땅콩사탕이나 누룽지사탕을 먹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외할머니 댁 특유의 달달한 냄새와 온기와 살랑거리는 마당의 바람까지 느끼고야 만다.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나머지 한 손에 가득 쥐어주셨던 그 사탕들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집에 다녀왔다. 짐을 풀고 집안을 살펴보던 중 반가운 땅콩사탕이 보였다. TV 옆 선반 작은 바구니 안에 가득 담긴 사탕을 보며 왠지 모를 반가움에 그중 하나를 까서 입에 넣고 한참 동안 오물거리며 사탕 맛을 보았다. 문득 '엄마와 아빠도 이제 사탕을 자주 먹는 나이가 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자 사탕 맛이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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