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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Jul 19. 2024

에드바르 뭉크

뭉크 전시회를 다녀와서

감정이 가진 미스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한계에 부딪힌 많은 사람들은 가끔 나 대신 감정을 표현해 주는 사람에게, 나보다 더 수월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매료된다. 언어가 아닌 그들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예술가라 부르기도 한다. 그림 또는 음악 같은 것들로 만들어진 감정의 표현물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여기 불안과 고통이라는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서 끌어올려 그림으로 표현해 낸 위대한 작가가 있다.


바로 에드바르 뭉크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화가 뭉크는 1862년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 시절이라면 어린아이들의 죽음이야 흔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 죽음이 나의 누이와 어머니일 때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뭉크의 어머니와 큰 누나 소피에는 폐결핵으로 인해 어린 그를 두고 떠난다. 운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에게 더 큰 아픔을 주는데, 그것은 여동생 라우라의 정신병과 아버지의 정신적 학대였다.


뭉크의 정신적 시련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의 연애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그의 첫사랑이었던 헤이베르그는 크로아티아 사교계 유명인사였는데, 당시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매력의 소유자로 뭉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연인이었다. 그런 여인을 사랑했으니 뭉크의 짓이겨진 마음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매력적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온 그녀에게 뭉크가 성에 찼을 리 없고 그녀는 금세 그를 떠났다. 그 후 뭉크에게 남겨진 건 슬픔과 여성에 대한 혐오의 감정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느낀 그 감정을 담아 흡혈귀(뱀파이어)를 그려냈다.


이후 뭉크는 자신의 두 번째 연인 다그니 유엘을 친구에게 빼앗기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심지어 그 둘은 뭉크를 배신한 채 결혼식을 올리고야 만다. 그 시절 그리게 된 작품이 '마돈나'라 불리는 그림이다. 이후 지치고 상처받은 뭉크에게 찾아온 세 번째 사랑은 '툴라'였다. 4살 연상인 툴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뭉크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지나친 사랑에 부담감을 느낀 뭉크는 그녀와 서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의 사랑이 변했다고 생각한 툴라는 자살을 이야기하며 그를 협박했고 뭉크는 그런 그녀를 말리다 그녀가 쏜 총에 맞아 왼쪽 3번째 손가락을 잃게 된다.


유년시절의 아픔과 세 번의 사랑이 가져다준 고통으로 뭉크는 망가져버리고야 만다. 불안증세가 심해지고 심한 환각 증세까지 얻고야 만 것이다.

뭉크는 그렇게 얻어진 감정의 잔해들을 재료 삼아 누구도 담아낼 수 없는 고통과 불안과 슬픔의 정서를 담아 절규를 그려내었다.


한때 감정이라 부르는 것이 순수한 인식의 결과인지 혹은 어려서부터 학습된 학습의 결과물인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가령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눈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대해 인지한 것을 뇌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화학반응의 결과물로서 인식하는 것인지 혹은 어려서부터 학습한 슬픔에 대한 대처들에 의해 슬프다고 하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 학습된 결과물로서 행동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말이다.


만약 감정이라는 것이 학습이 가능한 것이라면 어릴 때의 경험이나 성인이 되었을 때의 경험으로도 계속해서 축적되고 그 폭이 깊어지는 것이라면, 아마 뭉크의 슬픔과 고통과 불안이라는 감정의 폭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게 더 깊고 어둡고 두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그에게 어쩌면 '절규'는 필연적인 작품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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