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귤을 까서 먹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내가 아는 어떤 친구는 어릴 적 귤을 하도 많이 먹어 손과 발, 얼굴이 노랗게 변해서 걱정이 된 아빠가 병원을 데리고 갔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해준 적도 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냉기가 느껴지고 옷차림이 점점 두꺼워지는 계절이 되면 노점상이나 과일, 채소를 파는 가게에는 주황색의 동그란 과일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수채화 붓으로 작고 동그랗게 주황색 점을 찍어 한 바구니 가득 채운 듯한 느낌의 귤을 보고 있으면 바야흐로 겨울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귤을 이야기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랫목이 존재하던 시절 두꺼운 솜이불에 발을 밀어 넣고 귤 바구니를 이불 위에 둔 채 TV를 보며 허겁지겁 귤을 까먹던 나의 모습이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아랫목 대신 전기장판 위에서, TV대신 넷플릭스를 보며 귤을 까먹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한 바구니 가득 담아 온 귤을 앉은자리에서 다 까먹는 귤에 대한 나의 식탐일 것이다. 이때 아랫목이 뜨거울수록, 귤이 시원할수록 그 맛이 더 배가 되는 데 나는 이것이 바로 계절의 맛이라 말하고 싶다.
그 맛있는 귤도 가끔은 질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이런저런 방법으로 보다 귤을 맛있게 먹어보기 위해 노력한다. 시원한 귤을 손으로 주무르다가 두어 번 공중으로 던지면 더 달아진다는 말도 안 되는 속설을 여기저기 전파 하면서 의식적으로 "더 달다 더 달다"를 되뇌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한 번은 캠핑장에서 귤을 까먹다가 불에 구워 먹으면 어떨까 해서 석쇠 위에 올려놓고 구워 먹어도 봤는데 따뜻하고 쫄깃한 맛이 꽤 괜찮았다고 기억한다. 어떤 이는 귤에 붙어 있는 껍질을 벗겨내고 안에 있는 탱글탱글한 과실만 취하며 더 맛있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의 입장에서는 조금 비위가 상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주도에서 귤 한 박스가 도착했다. 천혜향이니 한라봉이니 레드향이니 하는 것들이 이래저래 많이 생겨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냥 귤이 더 좋다. 한겨울 외출할 때 가방에 한두 개 집어넣어 두고 버스에서 몰래 지하철에서 몰래 하나씩 꺼내어 까먹기에도 수월하고, 길거리에서 마음이 동해 한 봉지 산 귤을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씩 나눠주는 맛도 좋다. 한겨울에 가끔 외출하기 위해 꺼내 입은 외투 주머니에 귤이 들어 있으면 괜히 횡재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추위 때문에 겨울을 싫어하는 내게 귤은 계절을 넘어서는 호감인 것이다.
현관에 도착한 귤박스를 힘껏 들어 올려 거실에 내려두고 칼을 가져와 박스를 열었다. 박스가 열리면 귤 향이 거실 전체에 사르르 퍼지는 것만 같다. 따뜻한 방 안에 시원한 냉기를 가득 머금은 귤이 있다는 것이 괜히 설레어 그중 하나를 집어 손에 올리니 달콤하고 상큼한 냉기가 짜르르 몸으로 전해진다. 박스를 이리저리 휘적휘적 하니 역시나 곧 곰팡이 귤로 진화하기 위해 준비 중인 눅눅하고 물러터진 귤 하나가 보인다. 재빨리 녀석을 뽑아내고 다른 귤은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귤 상자를 서늘한 곳으로 물린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귤을 한 바구니 가득 담아 온 뒤 전기장판의 전원을 켠다. 지난주에 보지 못한 드라마를 켠 뒤 이불속에서 귤을 까먹고 있는 지금의 나는 몰디브에서 모히또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계절과 상황에 꼭 들어맞는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문득 올겨울도 귤이 있다면, 귤과 함께라면 겨울의 맹추위도 크게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