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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Dec 14. 2023

겨울 독감

감기 조심하세요.

가장 싫은 게 뭐야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겨울"이라고 대답하던 시기가 있었다. 있었다고 말하면 지금은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겨울은 여전히 싫다. 얼마 전 감기를 심하게 앓고 나서야 내가 진짜 겨울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왜 싫은가를 이야기하자면 아마 수만 가지 이유를 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겨울이 찾아오기 전 차가운 바람과 함께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기가 내가 겨울을 가장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그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옷차림을 가다듬는다. 옷을 겹겹이 껴 입기도 하고 두꺼운 바지와 따뜻한 털실로 만들어진 옷을 겹쳐 입기도 한다. 옷을 많이 껴 입을수록 몸이 둔해지는 것이 싫지만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야만 감기를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꺼운 옷과 따뜻한 장갑을 껴도 감기는 어느 틈엔가 코와 목을 통해 온다. 목이 잠기고 코에서 의지와 관계없이 물이 흐른다면, 결국 또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어버린다.


처음엔 목이었다. 목이 칼칼하고 잔기침이 올라오기에 지독히 앓기 전에 막을 수 있는 순간은 지금뿐이라는 심정으로 극약처방을 시도했다. 쌍화탕을 데워서 마시고 잠들기 전 우엉차를 또 한 컵 데워 마신다. 비타민도 털어 넣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체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집에서도 수면양말을 신고 목까지 올라오는 폴라티를 입는다. 따뜻하게 따뜻하게, 겨울의 한복판에 있지만 내 몸만은 오롯이 뜨거운 대서양 작은 섬의 모래사장 위에서 따뜻한 햇살을 내리쬐고 있는 것처럼 체온을 유지한다. 어쩌면 이대로 넘어갈 것도 같다. 그저 목이 칼칼한 정도로, 그저 코에서 약간의 물이 흐르는 정도로 넘어가길 바라며 따뜻한 잠을 청한다.


다음날 아침에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는 막혔고 칼칼했던 목이 퉁퉁 부어오른 것이 느껴졌다. 몸이 으슬으슬한 것이 몸살 기운까지 느껴졌다. 감기 기운을 물리치라고 바깥에서 불어넣었던 열이 이제 몸 안에서 관절에서 이마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된통 걸렸구나. 이제는 방법이 없다. 결국 병원을 찾고야 만다. 


"독감이시네요. 주사 한 대 맞으시고요.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먹고 며칠 좀 푹 쉬세요."


장갑 낀 손이 시리고 관절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아프다. 콧물과 기침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쯤 되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심했는데, 찬바람도 피하고 따뜻한 곳에 숨어서 감기와 몸살과 독감과는 먼 곳에 있으려고 노력했는데, 여지없이 찾아온 독감이라는 불청객이 여간 성가시고 귀찮다. 게다가 연말과 함께 몰아친 일 때문에 치어 사는 와중에 독감까지 걸리니 더더욱 일할 맛이 나지가 않는다. 겨우 하루하루 끝내야 할 업무들을 꾸역꾸역 처리해 내는 와중에 증상은 서서히 사라졌다. 결국 다 앓고 나서야 떠나고 마는 독한 녀석이다.


처음에는 콧물이 사라졌다. 사라짐과 동시에 왼쪽 오른쪽이 번갈아가며 막혀 성질을 돋우었지만 그것이 작별 인사라면 참을 수 있다. 그다음엔 목의 통증과 기침이 사라졌다. 더 이상 뜨거운 물을 억지로 마시지 않아도 되었고 떨어져 가는 우엉차를 세며 더 사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음엔 뼈와 관절과 머리를 짓누르고 떨게 했던 몸살 기운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 녀석은 꽤나 질겨서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무기력증으로 나를 괴롭혔다. 무기력하지만 일은 해야 했기에 대충대충 일했다. 아픈데 어쩌란 말인가. 마침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한껏 개운해지고 나면 이내 그 아팠던 시간들은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버린다. 하지만 독감에 걸리고 무기력했던 시간까지 곱씹는다면 거진 한 달을 앓았던 것 같다.


겨울의 초입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아픔은 내가 겨울을 싫어하게 된 이유 중 아마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굴이나 귤이나 호빵이나 붕어빵, 그리고 소복이 쌓이는 눈과 마음을 정(精)하게 해주는 왠지 모를 차가운 기운, 새벽녘 볼에 닿는 시원한 바람과 두툼한 패딩이 주는 따스한 온기조차도 내가 겨울을 싫어하는 마음을 돌려세우지는 못한다. 아픔을 다 잊고 나서도 여전히 겨울이 싫은 걸 보면 겨울이라는 계절에 쉬이 마음이 열릴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겨울에 대한 작은 기대 같은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그 차갑고 어둡고 한껏 내려앉은 계절이 봄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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