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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Oct 31. 2023

10월 31일의 마음가짐

올해도 두 달 남았다.

걸음 뒤에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뒤따라온다. 붉은빛으로 물든 커다란 나뭇잎 하나가 나의 발걸음에 작은 조각으로 흩어진다.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고 살갗을 스치는 서늘한 기운으로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기가 무섭게 나뭇잎은 붉게, 노랗게 물들어 조각조각 떨어진다. 봄의 기운이 담긴 낙화와 달리 떨어진 가을 낙엽은 피해 갈 길 없이 그대로 밟혀 바스락 소리를 내며 겨울로 사라진다.


이 계절쯤 되면 슬슬 한해를 정산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올 한 해 무엇을 했고 내가 연초에 계획했던 것들을 얼마나 이루었는지 말이다. 연초에 계획한 것들이 한가득인데 가을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바닷가에서 집어든 모래 같아서 쥐었던 손을 펴보면 남아 있는 것은 작은 모래알의 흔적뿐인 것 같다. 손에 남겨진 그 흔적이라도 아쉬움을 달래 보려 뒤적뒤적해 보지만 남겨진 것들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새해 계획을 세우고자 의식까지는 아니어도 나만의 기념일 같은 것을 만든 지는 몇 해 되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작은 산장을 빌려 난로에 불을 지피고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새해 계획을 세운다. 특별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거창할 것도 없는 새해 계획이지만 그렇게 몇 가지 계획을 세우고 나면 한 해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작은 기둥 같은 것이 세워지는 느낌이 든다. 가령 올해는 10km 마라톤 참가와 글쓰기에 대한 열의 같은 것을 넣어서 계획을 세웠다. 그 외의 부수적인 것들도 '해야지' 또는 '해보아야지'라는 계획으로 손위에 담아는 두었는데, 10월쯤 되니 여지없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버린 듯하다. 그래도 10km 마라톤은 실행에 옮겼고 글쓰기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조금은 만족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보지만 여전히 빠져나간 모래알들이 더 신경 쓰인다.


'매해 찾아오는 결산의 순간에 언제 한 번이라도 당당하거나 흡족한 적이 있었던가'라고 생각해 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시작의 때에 가슴 설레도록 찾아온 새로운 계획들에 마음을 빼앗겨 열심히 하고자 하지만 한여름의 열기를 맞이하여 한풀 꺾여버린 그 열정은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지내다가 10월 말이 되어서야 돌이켜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시들해진 열정마저 차게 식어버려 어느 구석 한 귀퉁이에서 발견될게 뻔하기에 더 아쉬운 것이리라. 다시 계획을 세우기까지 두 달여 남짓 남은 시점에 차게 식은 계획들에 다시 한번 열기를 전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극적인 변화야 없을 테지만 적어도 남겨질 내 나이테에 작은 자국 하나는 새겨야겠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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