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없던 일개미가 아이 혼자키우는 삶을 택해보니 이렇더라
사랑을 받을 곳도, 줄 곳도 없었다.
평일과 주말에 투잡을 뛰면서 저녁에는 학원에 다니기 바빴다. 나 하나쯤 사라져도 아무도 몰랐을 만큼 나는 존재감없는 일개미일 뿐이었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랑을 받을 곳도 없었고, 사랑을 줄 곳도 없었다. 혼자 벽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게 가장 편했다. 그 흔한 가족의 사랑조차 받기 어려웠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도 잘 몰랐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가족이라는 존재는 나의 삶을 뒤바꾸었다.
엄마이자 아빠인 삶,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런데 그 무게는 단지 책임의 무게뿐만은 아니었다. 내가 받을 사랑의 무게가 포함되어 있더라
아이가 올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양육자의 역할, 우리 가정의 생계를 지키는 가장의 역할, 나는 엄마이자 아빠인 삶을 살고 있는 한부모가장이다. 누군가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거나 결핍된 가정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참 현실에 치여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건, 이 삶이 불행하고 힘들어서 울었던 게 아니라 내가 두가지를 다 할 수 있는데 물리적으로 할 수 없다는 분노에 치민 눈물이었다. 눈물의 오기는 나를 미친듯이 성장시켰다.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 경제적으로 부족하고 힘들것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에서 멈추면 안된다. 내 자신에 대한 결핍으로 앞으로 얼마나 폭팔할 수 있을지 때를 기다리면서 갈고 닦을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이 삶이 꽤 맘에 든다. 내 삶에 이 아이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무엇도 못할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랄까. 재밌는 얘길 하나 하자면, 가끔은 내 근본없는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일까 고민도 한다. 글을 쓰면서 또 한번 잠시 고민하는데 우리 짱짱이 뒷통수를 보니 웃음이 난다.
어젯밤, 늦게자는 바람에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오전 8시 7분. 벨소리에 깼는데 짱짱이었다.
"엄마~ 엄마 안일어나길래 학교에 일찍 왔어요~ 책상에 뭐 적을거 올려놨으니까 적어주세요~"
8시도 되기 전에 등교해서 엄마를 깨우는 것도 기특한데 든든함에 세심함까지 겸비했다. 늦잠을 자서 미안한 아침이었지만 우리 짱짱이가 나에게 선물하고 간 사랑에 나는 하루종일 행복에 겨워하는 중이다.
미혼모, 한부모가정의 자녀는 부모가 한명이기 때문에 잘 못키울 것이다. 결핍아동일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도 들었다. 사실 이 말이 신경쓰여 더 엄격한 부모로 살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짱짱이를 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냥 미칠듯 사랑스럽고 예쁘고 똑똑하다. (엄마시점의 무한칭찬)
한편으로는 부모 한명이서 아이에게 사랑을 쏟아주기만 하다가 지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짱짱이는 내 가슴속에 사랑이 채워지다 못해 넘치게 한다.
"엄마, 나는 엄마가 엄마도 되고 아빠도 되니까 좋아요."
엄마이자 아빠인 삶, 생각보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