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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실장 Nov 16. 2020

읍소한다..

지하철에서.. 

평소와 같이, 여느 때와 같이..

오늘도 새벽부터 열일한(열심히 일한) 팔을 주무르며 지하철을 탄다. 요즘 보통 이동하는 시간대가 점심 이후이다 보니, 그래도 지하철 자리에 앉아서 가는 날이 많아, 이 작은 것에도 엎드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닌다. 


지하철 7호선, 8-4칸.. 

지하철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3달이 다 되어간다. 2호선 환승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기 위해 늘 꼬리칸을 애용하고, 검은 백팩을 앞으로 메고, 빈자리에 앉아 양팔로 가방을 감싸며 책 한 권을 꺼내서 읽는다. 정말 나(?) 답지 않은 일상의 루틴이지만, 금방 잠들고 마는 과거의 습관 또한 여전하게 반전이다.






작은 사건이 일어난 것은, 내가 책을 두장 정도 넘겼을 즈음, 슬슬 몰려오는 잠에 마스크 안으로 크게 하품을 몇 번 하고 있을 때쯤... 어떤 아저씨가 지하철 바닥에 쓰러졌다. 나에게서 멀지 않았기에, 안고 있던 가방을 자리에 내려놓고는, 가까이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인 한 여성과 함께 쓰러진 아저씨를 돌본다. 

"괜찮으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쓰러진 사람에게 이동하는 반사적인 움직임과 쓰러진 사람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여성, (물론 나만의 상상이지만)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선생님 같아 보이는 여성이 주로 질문을 했고, 옆에서 나는 그것을 도왔다. 119를 불러달라는 여성의 요청에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119를 누르곤, 반대쪽 음성의 질문에 따라, 여기는 어디며~ 환자의 상태는 어떠하며~ 등의 대답을 해주고는 역무원에게 알리기 위해 주변의 한 남성에서 SOS벨을 누루고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5분쯤 지났을까~ 

지하철은 역에 계속 정차해 있었고, 빠르게 달려온 지하철 공무원들과 함께 쓰러진 아저씨를 들어 차량밖으로 이동시키고는, 난 다시 차량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쓰러진 아저씨는 의식도 잃지 않았고, 어딘가가 아픈 표정도 아니었다. 누워서 핸드폰을 하는 것으로 보아, 정신도 신체도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낮술이 의심되어 살짝 냄새도 맡아봤었다. 

어쨌든 그렇게 5분 여가 흘러 지나갔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당황은 하였으니, 상황이 마무리된 뒤에 몇 분이 지나 나 역시 안정을 찾았다. 

차라리 안정을 찾지 말 것을..

안정을 찾고 나니, 119에 전화를 걸어 장소를 설명하기 위해, 현재 역과 차량번호, 그리고 몇 호인지 확인하고자 두리번거릴 때 봤던 이상하고(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기분 나빴던) 풍경들이 다시 기억이 났다. 

차량 칸과 정차역을 열심히 찾는 내 바쁜 시선 뒤로, 하나같이 핸드폰으로 쓰러진 아저씨와 주변의 여성과 나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들..  


뭐지.. 이 찝찝한 기분은..





일상이 되어버린 스마트폰 세상.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관심. 

한 인간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이기심.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있어 재미난 것"이라 치부하며 행하는 행위들.


맛있게 먹은 음식, 기억할 만한 멋진 장소, 간직할 만한 퍼포먼스 등.. 그래, 그런 것들 올리는 것을 뭐라 하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음식에, 다양한 물건들을 찍어 각종 SNS에 올리면 나도 때때로 '좋아요'를 한 번씩은 눌러준다. (물론, 솔직히 좋아할 이유는 없지만)

그런데.. 쓰러진 사람은 왜 저렇게 열심히 촬영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혹여나, 그것을 어딘가에 올린다면.. 왜? 대체 무엇을 위해서?


세상이 달라졌기에 어색하고 불편해도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내 옆에 와서, 이 모든 것들에 불편해하는 나에게 조언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쓰러졌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서 있는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며, 

사람이 쓰러졌으니, 다 같이 모여 걱정하고 도울 수 있는 있을 찾아서 한다. 

이것이 평소에 정의감이라곤 1도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적당히 이기적이기도 한 나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의 기본값이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그래도 괜찮은 세상'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기존과 달라지는 상황들이 어색하고 불편한 것은,

진정.. 나만 느끼는 것일까~


진심으로 읍소한다. 

사람이 쓰러지면, 카메라가 먼저가 아니라, 119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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