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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실장 Oct 26. 2020

택배기사님들의 연이은 과로사

금주의 이슈 때리기.. (10월 18일~10월 24일)

16시간... 

최근 13번째로 사망한 기사님의 하루 근무시간이라고 한다. 

앞으로 몇 명이나 더, 과로로 숨을 거두는 택배기사님의 뉴스를 대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난 성악설을 믿는 편이다. 

왠 뜬금없이, 갑자기.. '성악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중심적이고 본능적이란 것을 믿는다. 어렸을 때는 맹자의 '성선설'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면서도 막연하게 '사람은 다 착하다'라고 믿었을 것이다. 100퍼센트 그렇게 믿었을 어린아이였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자기중심적이고 본능적인 악한 감성이 표출되어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들을 보고 있자니 생각을 달리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악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 도덕적 수양이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 악한 본성을 누르고 타인과 어우러져 살 수 있다. 여기서 교육을 SKY와 같은 좋은 대학의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여기서 교육이란, 가정에서의 좋은 교육, 학교에서의 도덕적 교육, 사회에서의 정의로운 교육과 같은 것일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수천, 수만번의 좌절을 겪으며 '포기'라는 것을 배운다. 그 '포기'라는 배움으로 인해 늘 솔직한 본성(욕구)을 눌러 감추며, 타인과 어우러져 살라는 교훈을 습득한다. 배려, 양보, 이타심.. 뭐 이런 것들로 포장하여 꽁꽁 숨기고는 있지만, 그 안에 진심으로 뭐가 들어있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아마도 우월함 혹은 억울함? 뭐 이런 것들이 아닐까.. 


그러다가 아주 고약한 순간이 온다. 

꽁꽁 감춰둔 사람의 악한 마음들이 튀어나오는 바로 그 순간. 정말 나쁜 건, 애석하게도 그 악한 마음들은 가장 가까운, 그리고 만만한 사람들에게 튄다는 사실이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 내가 어떻게 하든지 다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이나, 나보다 약하거나 혹은 내가 서있는 위치보다 아래쪽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가족에게도 그럴진대, 하물며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에서는 얼마나 더 나쁘고 애석할까..


기사를 통해, 택배기사님들의 처우에 안타까워하고, 그분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대기업들을 댓글을 통해 심판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정말 급하지 않은 물건임에도 주문 시 새벽 배송에 체크하고, 주문한 물건의 배송이 늦는다는 이유로 불만을 접수한다. 좁은 골목길에 배송을 위해 잠깐 세운 택배차량에게 시원하게 자동차 클랙슨(크락션)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대고, 어느 한쪽이 양보해야만 지날 수 있는 골목길에서는 당연히 택배차가 양보해야 하기에 꼼짝 않고 기다린다. 


같은 시간에, 택배사의 대표자는 언론사들의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를 한다. 그리고 약속한다. 4,000명의 분류작업 인원들을 단계적으로 충원하여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한다. 그 회사의 상/하차장이 몇 개일까? 우리 집 주변에도 왔다 갔다 하면 본 상/하차장이 2개나 있고, 그 2곳 모두 지날 때마다 20~30여 대의 택배차량이 정차되어 있던데, 4,000명이란 숫자는 충분한 건가? 그것도 단계적으로? (또 구체적 설명은 없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이윤추구가 제1의 목표인 기업들에게 무턱대고 욕부터 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내가 모르게 그 기업은 나름대로 시스템 자동화등의 노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설령 그 자동화가 가까운 미래에 분류작업인력 충원보다 훨씬 환경개선이 될 수 있는 '신의 한 수'일 수도 있으니.. 그래도 일단은 욕부터 좀 하자. 나 역시 순자의 '성악설'에 따라 내 타고난 본성은 악하니, 그동안 교육과 도덕적 수양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하더라도, 까짓것 잠시만 잊고 시원하게 욕 한번 하련다. 에잇~ xxx





난 정말 진심으로 '총알배송', '새벽배송' 이딴 것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대체 어디까지 편해지고, 어디까지 게을러질 것인가. 정말로 당일로 배송을 받지 않으면 큰일이 생기는 경우는, 대부분 미리 준비를 못한 것이거나, 문 밖에 나가는 것이 귀찮은 것이다. 모든 게 빨라지니,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여유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눈곱 떼기도 전에 누군가가 집 앞에 물건을 가져다 놓으니, 저녁에 주문하는 게 눈뜨면 내손에 있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런 당연한 일들이 어느 날 일어나지 않으면 나만 당한 억울한 부당함이다.


비단, 택배만의 문제일까..

이익만을 쫒는 기업, 생계를 위해 뛸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택배 앞에선 깐깐한 '갑'이 되는 소비자들, 그리고 소를 잃어야 마구간을 잠깐 들여다보는 정부... 

개선을 위해선 기업은 돈을 써야 하기에 택배비가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은 택배노동자의 처우는 슬프지만, 내 주머니에서 돈이 더 세어나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고, 그 틈을 타서 가격경쟁력을 가진 경쟁사는 시장논리에 의해 나타날 것이다. 아쉽지만, 다시 도돌이표다. 


택배기사님의 사망기사를 읽는다. 

관련기사가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지는 이 시간에도, 검색창의 언론 기사들 아래로는 각종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 배송이 늦는 불편함을 하소 하는 글들이 '택배'라는 연관검색으로 불편하게 보인다. 

정말 불편함이 느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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